구한 말 을사오적에 맞서자는 의병장 면암 최익현 선생의 발언

구한 말 을사오적에 맞서자는 의병장 면암 최익현 선생의 발언 "철로(鐵路)는 저들이 우리나라를 멸망시키려는 수단의 한 가지인데 매일 기차를 타는 자가 다 실을 수 없을 정도이니, 어찌 우리 백성의 어리석음이 이리도 심하단 말인가. 생각해 보건대, 각처에서 하루에 차를 타는 비용이 어찌 천만만 되겠는가. " 。鐵路者。彼所以滅人國之一事。而每日乘車者。車不能容。何吾民之愚。至於是耶。試思各處。一日乘車之費。何啻以千萬計。 _고전번역서 > 면암집 > 면암선생문집 제16권 > 잡저 >  "기차 타지마라" 뭔 소리여 기차 탈꺼여 !!! 저리 비켜! 아 아니 저 저런 고오얀 놈 역시 아랫것들은...!

매천집의 거북선 얘기

매천집의 거북선 얘기  // 매천집 제1권 / 시(詩)○갑신고(甲申稿) 이 충무공 귀선가〔李忠武公龜船歌〕 [DCI]ITKC_BT_0660A_0030_080_0070_2011_001_XML DCI복사 URL복사 천구가 달을 먹으니 큰 바다가 말라붙고 / 天狗蝕月滄溟竭 만리 멀리 거센 바람에 부상이 꺾이었네 / 罡風萬里扶桑折 문경 새재 주흘산 웅장한 관문이 무너지자 / 主屹雄關已倒地 왜병 십만의 수군이 마구 쳐들어올 제 / 舟師十萬仍豕突 원씨 집 노장은 한낱 고기 자루에 불과하여 / 元家老將一肉袋 외로이 섬에 숨으니 개미 구원도 끊어졌네 / 孤甲棲島蚍蜉絶 국토방위의 중대한 위임 너 나 할 것 없거니 / 封疆重寄無爾我 거룻배를 어찌 진이 월 보듯 할 수 있으랴 / 葦杭詎可秦視越 전라 좌수영 남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 左水營南門大開 둥둥둥 북 울리며 거북선을 발진시키니 / 淵淵伐鼓龜船出 거북 같으나 거북 아니요 배 같으나 배도 아니요 / 似龜非龜船非船 판옥은 푹 솟은 데다 큰 물결을 소용돌이쳐대네 / 板屋穹然碾鯨沫 네 발은 수레바퀴처럼 빙글빙글 돌게 하고 / 四足環轉爲車輪 양쪽 옆구리엔 비늘을 펼쳐 창 구멍을 만들고 / 兩肋鱗張作槍穴 스물네 개의 노를 물속에서 춤추듯 저어라 / 二十四棹波底舞 노 젓는 수군은 수면 아래서 앉고 눕고 하였네 / 棹夫坐臥陽侯窟 코로는 검은 연기 내뿜고 눈은 붉게 칠하여 / 鼻射黑烟眼抹丹 펴면 헤엄치는 용 같고 움츠리면 거북 같은데 / 伸如遊龍縮如鼈 왜놈들 하늘만 쳐다보며 통곡하고 애태워라 / 蠻子喁喁哭且愁 노량 한산 대첩에서 붉은 피가 넘쳐흘렀지 / 露梁閒山漲紅血 적벽의 소년은 때를 만난 게 요행이었고 / 赤壁少年逢時幸 채석의 서생은 담대한 결단을 과시했지만 / 采石書生誇膽決 누가 바다를 횡행하며 백전을 치르면서 / 孰能橫海經百戰 고래 악어를 베고도 칼날이 여전할 수 있으랴 / 截鯨斬鰐鋩不缺 그로부터 이백 년 이후 지구가 터지고 찢겨 / 二百年來地毬綻 화륜선이 동으로 와서 화염이 태양을 가려라 / 輪舶東行焰韜日 범 같은 놈들이 양 ...

대조영 사극 1화에서 보던 그 장면이 정유재란 때도 있었군.

대조영 사극 1화에서 보던 그 장면이 정유재란 때도 있었군. // ○ 청정 등의 군사가 함양(咸陽)에 이르렀는데, 선봉 수천 명이 진군하여 황석성(黃石城) 밑에 임박하여 통사(通事)를 시켜 개산(介山)을 불러 말하기를, “너의 부친이 여기 있으니 문을 열고 나와 보라.” 하였다. 백사림(白士霖)이 개산을 참수하여 성밖으로 내던졌다. 왜적이 말하기를, “비록 백 명의 개산을 죽인다 하더라도 우리가 무엇을 아깝게 여기겠는가?” 하였다. 다음날 적병이 고함쳐 말하기를, “성을 비어 두고 나가면 쫓아가 죽이지는 않겠다.” 하니 백사림이 줄을 타고 성에서 매달려 내려가고 군사는 무너져 달아났다. 적이 입성하여 마구 죽이니, 함양 군수(咸陽郡守) 조종도(趙宗道)ㆍ안음 현감(安陰縣監) 곽준(郭䞭) 등은 가족과 함께 죽었으며, 근처 첩입관(疊入官)과 장졸 등 죽은 자가 5백여 명에 달했다. 개산은 김해(金海) 사람이다. 아버지가 임진란 초부터 적에게 붙어 적이 성을 함락시키는 계책을 도왔다. ○淸正等兵至咸陽。先鋒數千。進迫黃石城下。使通使招介山曰。爾父來此。開門出見。白士霖斬介山。投之城外。賊曰。雖殺百介山。吾何惜焉。翌日賊兵呼曰。空城出去。則不爲追殺云。士霖縋城潰走。賊入城亂殺。咸陽郡守趙宗道安陰縣監郭䞭等。並家屬死之。近地疊入官將士被害者。多至五百餘名。介山金海人其父自亂初附賊助賊陷城之謀  _ 고전번역서 > 대동야승 > 난중잡록 > 난중잡록 3 > 최종정보 개산의 아버지는 김해 사람이다. 임진왜란 초부터 왜군에게 붙어 성마다 돌아다니며 투항을 권유하는 일을 맡았다. 개산은 아비와는 달리 조선군에 복무했다. 그런데 황석산성 성주로 보이는 백사림이 아비를 보고 동요하는 개산을 참수하여 성 밖으로 내던졌다. 왜군들은 백성들을 죽이지 않고 백성들을 인질로 잡아 황석산성 앞에 세워두고 잘 대해주며 투항을 권유하니 성내의 민심이 동요한 듯하다. 등신같은 백사림이 툼레이더 라라 크로프트 빙의하고 줄을 타고 달아나니 군사가 모조리 무너져 달아나  마침내 황석산성이 함락되었다...

대마도 지방장관 등원친광이 타이라를 피해 고려로 도망갔다가 돌아오다.

  대마도 지방장관 등원친광이 타이라를 피해 고려로 도망갔다가 돌아오다. //사료 : 오처 경(아즈마 카가미) 고려관련 일본사료 > 아즈마카가미(吾妻鏡) > 쓰시마의 지방장관이 난을 피해 고려로 가다 쓰시마의 지방장관이 난을 피해 고려로 가다 고토바 덴노(後鳥羽天皇) 겐랴쿠(元曆) 2년 5월 23일 정사(丁巳) 검색결과 보기 이전 검색결과 다음 검색결과 상위로 가기 이전으로 가기 다음으로 가기 출전(자료명) 아즈마카가미(吾妻鏡) 연대 정보 1185년(고려 명종 15) 5월 23일(음) / 6월 22일(양) 연관 고려측 기록 개요  이 자료는 1185년(고려 명종 15)에 쓰시마의 지방장관[對馬守] 후지와라노 지카미쓰(藤原親光)가 헤이시(平氏)의 공격을 우려하여 고려로 도망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카미쓰가 도망하자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賴朝)가 쓰시마 슈고닌(守護人) 가와치 요시나가(河內義長)로 하여금 빨리 귀국할 것을 종용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아즈마카가미(吾妻鏡)』 고토바 덴노(後鳥羽天皇) 겐랴쿠(元曆) 2년 6월 14일 기사에【연관사료】 지카미쓰가 일본으로 귀환할 때 고려 국왕이 공선(貢船) 3척에 귀한 보물을 실어 보냈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 배는 고려에서 일본에 보낸 공선(貢船)이라기보다는 고려를 왕래하던 쓰시마의 진봉선(進奉船)으로 추정되며, 배에 실은 보물 역시 쓰시마의 진봉에 대한 답례에 해당하는 회사품(回賜品)으로 볼 수 있다. 아울러 예전부터 쓰시마 상인을 비롯한 규슈 사람들이 고려의 김해(金海)를 왕래한 것으로 보아, 지카미쓰가 도망쳐 온 고려 지역은 김해[金州]일 가능성이 있다.  한편, 원문에는 23일 정사(廿三日丁巳)로 기록되어 있으나 1185년 5월 23일의 간지는 을사이다. 원문 廿三日丁巳. 參河守 範賴受二品之命, 爲對馬守親光迎, 可遣船於對馬嶋之處, 親光爲遁平氏攻, 三月四日渡高麗國云々, 仍猶可遣高麗之由, 下知彼嶋在廳等之間, 今日卽遣之, 當嶋守護人河內五郞義長同送狀於親光, 是平氏悉滅亡訖, 不成不審, 早...

고다이쇼 미나모토 요리토모가 소물자정을 보내 고려를 노략질하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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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다이쇼 미나모토 요리토모가 소물자정을 보내 고려를 노략질하게하다. ==테마 음악====== https://youtu.be/a6GaKDj_JLA?si=zCZ4aIxdGBID1rAL&t=178 ============== 고다이쇼(右大將)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賴朝)가 소물자정(小物資政)을 보내 고려를 노략질하게하다.  // 고려관련 일본사료 > 아즈마카가미(吾妻鏡) > 고려를 정벌했었다는 장수를 사로잡다 고려를 정벌했었다는 장수를 사로잡다 준토쿠 덴노(順德天皇) 겐랴쿠(建曆) 3년 5월 3일 계묘(癸卯) 검색결과 보기 이전 검색결과 다음 검색결과 상위로 가기 이전으로 가기 다음으로 가기 출전(자료명) 아즈마카가미(吾妻鏡) 연대 정보 1213년(고려 강종 2) 5월 3일(음) / 1213년 5월 24일(양) 연관 고려측 기록 개요  이 자료는 1213년(고려 강종 2)의 기록으로 호조(北條) 정권 시기에 아사이 사부로 요시히데(朝夷三郎義秀, 혹은 아사히나 사부로 요시히데(朝比奈三郎義秀))에게 토벌당한 진제이(鎭西) 사람 소물자정(小物資政)이 죽은 고다이쇼(右大將)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賴朝) 때에 고려를 정벌한 대장군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요시히데는 아버지 와다 요시모리(和田義盛)와 함께 호조 도키마사(北條時政)에 투항하였었는데, 1213년(겐랴쿠(建曆) 3)에 반란을 일으켰다가 처절하게 패배하여 멸문당하였다. 『조쿠혼초쓰간(續本朝通鑑)』 준토쿠 덴노(順德天皇) 겐랴쿠(建曆) 3년 5월 3일 기사에서【연관사료】 쓰시마 사람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와다 요시모리의 아들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요시히데는 바다를 건너 고려의 부산포(釜山浦)로 도망쳐 갔다. 그런데 그곳 사람들이 요시히데의 용맹함에 탄복하여 그가 죽은 후에 신사(神社)를 세워주었으며, 조이명사(朝夷名社)로 불렀다는 것이다. 요시히데가 부산포로 왔다는 쓰시마의 전승을 사실로 보기는 어렵지만, 일본의 규슈나 쓰시마 지역이 한반도 남부와 적지 않게 교역이나 인...

일본 기록 고콘초몬주의 충격적 기록. 미나모토 요리토모가 고려를 정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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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기록 고콘초몬주의 충격적 기록. 미나모토 요리토모가 고려를 정벌하다 정도전의 군제 개혁 상소에서 뜻하지않게 나타난 역사의 비밀..., 고려 말 조선 초 외의 다른 고려시대에도 일본군의 침입이 있었다고 말하는듯한 정도전 ===테마 음악======== https://youtu.be/a6GaKDj_JLA?si=zPlZCBZz4PkixzAp ================== // 태조실록 5권, 태조 3년 2월 29일 기해 5번째기사 1394년 명 홍무(洪武) 27년군제 개정에 관한 판의흥삼군부사 정도전의 상서문국역원문.원본 보기 판의흥삼군부사(判義興三軍府事) 정도전(鄭道傳) 등이 상서(上書)하였다. "예로부터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은 문(文)으로써 다스림을 이루게 되고, 무(武)로써 난리를 평정하게 되니, 문무(文武) 양직(兩職)은 사람의 두 팔과 같으므로, 한 쪽만을 두고 한 쪽은 버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본조(本朝)에는 이미 백사(百司) 서부(庶府)가 있고, 또 제위(諸衛) 각령(各領)이 있으니, 문무(文武)의 관직을 귀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병(府兵)의 제도는 대개 전조(前朝)의 그전 것을 계승하였는데, 전조의 성시(盛時)에도 다만 부병(府兵) 외에 다른 군호(軍號)는 없었기 때문에, 북쪽에는 큰 요(遼)나라가 있고 동쪽에는 여진(女眞)과 일본(日本)이 있어 밖에서 침략(侵掠)했으며, 또 초적(草賊)이 있어 때때로 나라안에서 도둑질하니, 사건이 작으면 중랑장(中郞將) 이하를 보내고, 사건이 크면 상장군(上將軍)과 장군(將軍)을 보내어 이를 방어하게 하고, 부득이한 경우에 이르게 된 뒤에는 군현(郡縣)의 군사를 징발하여 밖의 적을 공격하고 안의 국토를 지키게 하여 4백여 년이나 전하여 왔으니, 그 당시 부병(府兵)의 강성(强盛)함을 알 수가 있습니다. 사변(事變)이 없으면 병법(兵法)을 익히게 하고, 사변이 있어 군대를 출동시키면 반드시 오진(五陣)으로 하였으니, 그 당시 병법의 익힘도 또한 알 수가 있습니다. 충렬왕(忠烈王)이 원(元)나...

고려사 왕건 세가_왕건의 즉위 조서

 고려사 > 세가 권제1 > 태조(太祖) 원년 > 6월 > 태조가 조서를 내리고 신하들이 사례하다 원문 국역글자 크게글자 작게이전 기사다음 기사출력 글자 크게글자 작게 태조가 조서를 내리고 신하들이 사례하다 丁巳 詔曰, “前主當四郡土崩之時, 剷除寇賊, 漸拓封疆. 未及兼幷海內, 俄以酷暴御衆, 以姦回爲至道, 以威侮爲要術. 徭煩賦重, 人耗土虛. 而猶宮室宏壯, 不遵制度, 勞役不止, 怨讟遂興. 於是, 竊號稱尊, 殺妻戮子, 天地不容, 神人共怨, 荒墜厥緖, 可不戒乎? 朕資群公推戴之心, 登九五統臨之極, 移風易俗, 咸與惟新. 宜遵改轍之規, 深鑑伐柯之則. 君臣諧魚水之歡, 河海協晏淸之慶, 內外群庶, 宜悉朕懷.” 群臣拜謝曰, “臣等値前主之世, 毒害良善, 淫虐無辜, 老稚嗷嗷, 莫不含寃. 幸今得保首領, 遭遇聖明, 敢不竭力, 以圖報效.” 글자 크게글자 작게 태조가 조서를 내리고 신하들이 사례하다 정사 조서를 내려 이르기를, “궁예[前主]는 4군(四郡)이 흙 무너지듯 무너지는 때를 맞아 도적의 무리를 제거하고 점점 영토를 넓혀갔다. 그러나 천하[海內]를 다 아우르는 데 미치지 못하고 갑자기 잔혹함과 포악함으로 백성을 다스렸으며, 간사함[姦回]을 가장 올바른 것[至道]으로 여기고 위협과 업신여김을 중요한 방법으로 삼았다. 요역(徭役)이 번거롭고 부세(賦稅)가 무거워 사람은 줄어들고 땅은 텅 비었다. 그런데 오히려 궁실만은 크고 장대하며 옛 제도를 따르지 않고 힘든 요역이 그치지 않으니 원망과 비난이 드디어 일어난 것이다. 이에 〈더하여〉 함부로 연호(年號)를 정하고 황제라 일컬었으며[稱尊] 처자를 살육하였으니, 하늘과 땅이 용납하지 못하고 귀신과 사람이 함께 원한을 품어 왕업의 기반을 송두리째 추락시켰으니[荒墜厥緖] 경계하지 않을 수 있으랴? 나는 여러 공(公)의 추대하는 마음에 힘입어 가장 높은 자리[九五]에서 관할하는 궁극에 올랐으니, 나쁜 풍속을 좋게 고치고 모든 것을 다함께 새롭게 만들려 한다[咸與惟新]. 마땅히 법도를 고칠 규범을 쫓을 것이며 깊이 가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