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서(漢書)_지리지(地理志) 유주(幽州) 낙랑군(樂浪郡) 부분 번역

이미지
한서(漢書)_지리지(地理志) 유주(幽州) 낙랑군(樂浪郡) 부분 번역 Book of Han (漢書), Treatise on Geography, Youzhou (幽州), Lelang Commandery (樂浪郡) // [⑩ 낙랑군(樂浪郡) 樂浪郡, 武帝元封三年開. 莽曰樂鮮. 屬幽州.[1] 戸六萬二千八百一十二, 口四十萬六千七百四十八. 有雲鄣. 縣二十五. 朝鮮,[2] 䛁邯,[3] 浿水, 水西至増地, 入海. 莽曰樂鮮亭.[4] 含資, 帶水西至帶方, 入海. 黏蟬,[5] 遂成, 增地, 莽曰增土. 帶方, 駟望, 海㝠, 莽曰海桓. 列口, 長岑, 屯有, 昭明, 南部都尉治. 鏤方, 提奚, 渾彌,[6] 吞列, 分黎山, 列水所出, 西至黏蟬, 入海, 行八百二十里. 東暆,[7] 不而, 東部都尉治. 蠶台,[8] 華麗, 邪頭昧,[9] 前莫, 夫租. 낙랑군(樂浪郡), 무제(武帝) 원봉(元封) 3년에 열었다. 왕망은 낙선(樂鮮)이라 했다. 유주(幽州)에 속한다.[1] 가구수는 6,2812이고 인구수는 40,6748명이다. 운장(雲鄣)이 있다. 현은 25개이다. 1) 조선현(朝鮮縣),[2]  2) 염감현(䛁邯縣),[3]  3) 패수현(浿水縣), 패수(水)가 서쪽으로 증지현(増地縣)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간다. 왕망은 락선정(樂鮮亭)이라고 했다.[4]  4) 함자현(含資縣), 대수(帶水)가 서쪽으로 대방현(帶方縣)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간다.  5) 점선현(黏蟬縣),[5]  6) 수성현(遂成縣),  7) 증지현(增地縣), 망(莽)은 증토(增土)라 했다.  8) 대방현(帶方縣),  9) 사망현(駟望縣),  10) 해명현(海㝠縣), 망(莽)은 해환(海桓)이라 했다.  11) 렬구현(列口縣),  12) 장잠현(長岑縣),  13) 둔유현(屯有縣),  14) 소명현(昭明縣), 남부도위(南部都尉)가 다스린다.  15) 루방현(鏤方縣),  16) 제해현(提奚縣),  17) 혼...

백잔 왕 여구의 조공 기사

 //Chinese [ ○ (咸安) 二年(372)春正月辛丑,  百濟·林邑王各遣使貢方物. .... 六月,  遣使拜百濟王餘句爲鎭東將軍, 領樂浪太守.  ] //En [ In the second year of the Jian'an era (372), in the spring, January, on the day of Xinchou, the kingdoms of Baekje and Linyi each sent emissaries to present local products as tribute. .... In June, an envoy was dispatched to confer the title of "General Who Guards the East" to King Yeogu of Baekje, also appointing him as the Governor of Lelang.  ] //조선 말  [ ○ (咸安) 二年(372)春正月辛丑,  百濟·林邑王各遣使貢方物. .... 六月,  遣使拜百濟王餘句爲鎭東將軍, 領樂浪太守.  ] [○ (함안) 2년(372) 봄 정월 신축일, 백제· 임읍 왕이 각자 사신을 보내 방물을 공헌하였다. .... 6월, (위대한 사마 진 난징 정권의 황제폐하 간문제 사마욱께서) 사신을 보내 백제 왕 여구를 진동장군으로 임명하고, 낙랑태수를 겸임하게 하였다.]

서기 18세기 초반 서기 1720년 중국 청나라 강희제 시대(이 때 조선은 숙종) 청나라 수도 베이징의 똥 처리하는 법

이미지
서기 18세기 초반 서기 1720년 중국 청나라 강희제 시대(이 때 조선은 숙종) 청나라 수도 베이징의 똥 처리하는 법  [ 인가에는 변소가 없고 대소변을 모두 그릇에 받아서 버린다. 성안의 궁벽한 거리에는 가다가다 깊은 웅덩이가 있는데, 인가에서 분뇨를 버리는 곳이다. 이것이 차면 실어서 밭으로 쳐낸다. 그 변 그릇은 요강 같거나 술 담는 그릇과 같아서, 우리나라 사람이 처음 보면 술그릇으로 알고 들이마신다. 호인(胡人)도 역시 우리나라 요강을 가져다가 밥그릇으로 썼다니 참으로 똑같은 일이다.  (人家無溷厠。二便皆器受而棄之。城內僻巷。往往有深窖。卽人家棄糞處也。滿則輦出于田。其溺器形如鳧。口如酒鐺。我國人初見。或認作酒器而吸之。胡人亦得我國溺缸作飯器。眞是對也。) ] _ 연행록선집 > 경자연행잡지 > 경자연행잡지 > [잡지(雜識)] 당시 중국 수도 베이징의 사람들은 변소가 없음. 똥을 그릇에 싸고, 그걸 웅덩이나 밭에 버림.   만주족(=호인=胡人) 조차도 저런 문화가 없음. 중국에만 있는듯한 문화인 것처럼 적고 있다. 참고로 고고학적으로 밝혀진 바로는 백제는 똥을 그릇에 쌈.  (첨부 사진 : 말기 백제 수도 사비성(부여시)의 오늘날 부여시 군수리에서 출토된 변기)  아마 백제도 청나라 시절 중국처럼 변소가 없는 듯?

진서 본기 간문제 편 백잔 왕 여구의 조공 기사

진서 본기 간문제 편 백잔 왕 여구의 조공 기사 //원문  [ ○ (咸安) 二年(372)春正月辛丑,  百濟·林邑王各遣使貢方物. .... 六月,  遣使拜百濟王餘句爲鎭東將軍, 領樂浪太守.  ] //한글 번역 [○ (함안) 2년(372) 봄 정월 신축일, 백제· 임읍 왕이 각자 사신을 보내 방물을 공헌하였다. .... 6월, (위대한 사마 진 난징 정권의 황제폐하 간문제 사마욱께서) 사신을 보내 백제 왕 여구를 진동장군으로 임명하고, 낙랑태수를 겸임하게 하였다.] //영어 번역  [ In the second year of the Jian'an era (372), in the spring, January, on the day of Xinchou, the kingdoms of Baekje and Linyi each sent emissaries to present local products as tribute. .... In June, an envoy was dispatched to confer the title of "General Who Guards the East" to King Yeogu of Baekje, also appointing him as the Governor of Lelang.  ]

사화주 사벌주 신라 말로 들판은 달

 사화주 사벌주 ... 신라 말로 들판은 '달' 관련 검색어 : 아사달  // 권 제8 신라본기 제8  >   신문왕(神文王)  >   11년 사화주에서 흰 참새를 바치다(0691년 (음)) 사화주에서 흰 참새를 바치다 ( 691년 (음) ) 沙火州獻白雀. 사화주(沙火州)註 001에서 흰 참새를 바쳤다.註 002 註 001 사화주(沙火州): 사화주는 사벌주(沙伐州)를 가리키며, 오늘날의 경북 상주시에 해당한다. 신라인들은 들(드르), 즉 들판을 ᄃᆞᆯ(달 또는 돌) 또는 ᄃᆞᆨ(닥 또는 독)으로 불렀고, 이것을 한자로 표기할 때에 같은 의미를 지닌 벌이나 부리의 표현을 빌어서, 벌의 경우는 그 음을 새겨 ‘伐’로, 부리의 경우는 그 음을 새겨 ‘弗’로, 그 뜻, 즉 훈(訓)을 새겨 ‘火’ 또는 ‘喙’로 각각 표기하였다(전덕재, 2009, 『신라 왕경의 역사』, 새문사, 54~55쪽). 오늘날 대구광역시 중구에 해당하는 달구벌(達句伐)을 달구화(達句火) 또는 달불(達弗) 혹은 달벌(達伐)로 표기하였고, 오늘날 경남 창녕에 해당하는 비사벌(比斯伐)을 비자화(比自火)라고 표기하였던 것에서 그 유례를 찾을 수 있다. 『삼국유사』 권제2 기이제2 후백제 견훤조에 “(견훤의) 아버지 아자개(阿慈介)는 농사를 지어 생활하였는데, 광계(光啓) 연간에 사불성(沙弗城) 지금〔고려〕의 상주(尙州)에 웅거(雄據)하여 스스로 장군(將軍)이라고 일컬었다.”고 전하는데, 이것을 통해 사벌주 또는 사화주를 사불주(沙弗州)라고도 표기하였음을 짐작해볼 수 있다. 사벌주의 변동에 대해서는 본서 권제4 신라본기제4 법흥왕 12년 2월조 참조. 註 002 흰 참새를 바쳤다: 『남제서(南齊書)』 권18 지(志)10 상서(祥瑞)조에 백작(白雀: 흰 참새)이 상서로운 새의 하나라고 밝히고 있다.

고구려의 진정한 계승자

고구려의 진정한 계승자 "도호부(都護府)가 이미 여러 번 옮겨져 옛 성은 신라(新羅)로 들어간 것이 많게 되었고 유민들은 돌궐(突厥)·말갈(靺鞨)에 분산되었다." 都護府旣屢遷, 舊城頗入新羅, 遺民散奔突厥靺鞨.  _선화봉사고려도경 신라가 고구려 혈통 많이 먹고 나머지는 돌궐,말갈(=발해말갈)이 먹음 돌궐 .. 투르크... 카자흐스탄 ... 터키.... 역시 그래서 터키가 형제의 나라이고 환빠들이 카자흐스탄에 그리 꽂히는건가. 이 기록 하나로 한국이 고구려의 계승자임과 발해가 한국사이고 터키,카자흐스탄은 한국의 형제 나라임이 증명되니 구절 하나 하나가 다 중요하구나!

백제 왕 여구가 난징 정권의 황제 사마욱(司马昱)에게 빌빌거리며 공물을 바치니 사마욱이 여구를 진동장군 겸 낙랑태수 겸 백제 왕으로 책봉하다.

 // 백제 왕 여구가 난징 정권의 황제 사마욱(司马昱)에게 빌빌거리며 공물을 바치니  사마욱이 여구를 진동장군 겸 낙랑태수 겸 백제 왕으로 책봉하다. ​ //고대 중국 기록 晋书 -> 帝纪第九 太宗简文帝 孝武帝 ​ 3  二年春正月辛丑,百济、林邑王各遣使贡方物。二月,苻坚伐慕容桓于辽东,灭之。三月丁酉,诏曰:「朕居阿衡三世,不能济彼时雍,乃至海西失德,殆倾皇祚。赖祖宗灵祗之德,皇太后淑体应期,籓辅忠贤,百官戮力,用能荡气务于昊苍,耀晨辉于宇宙。遂以眇身,托于王公之上,思赖群贤,以弼其阙。夫敦本息末,抑绝华竞,使清浊异流,能否殊贯,官无秕政,士无谤讟,不有惩劝,则德礼焉施?且强寇未殄,劳役未息,自非军国戎祀之耍,其华饰烦费之用皆省之。夫肥遁穷谷之贤,滑泥扬波之士,虽抗志玄霄,潜默幽岫,贪屈高尚之道,以隆协赞之美,孰与自足山水,栖迟丘壑,徇匹夫之洁,而忘兼济之大邪?古人不借贤于曩代,朕所以虚想于今日。内外百官,各勤所司,使善无不达,恶无不闻,令诗人元素餐之刺,而吾获虚心之求焉。」 癸丑,诏曰:「吾承祖宗洪基,而昧于政道,惧不能允厘天工,克隆先业,夕惕惟忧,若涉泉冰。赖宰辅忠德,道济伊望,群后竭诚,协契断金,内外尽匡翼之规,文武致匪躬之节,冀因斯道,终克弘济。每念干戈未戢,公私疲悴,籓镇有疆理之务,征戍怀东山之勤,或白首戎阵,忠劳未叙,或行役弥久,担石靡储,何尝不昧旦晨兴,夜分忘寝。虽未能抚而巡之,且欲达其此心。可遣大使诣大司马,并问方伯,逮于边戍,宣诏大飨,求其所安。又筹量赐给,悉令周普。」乙卯,诏曰:「往事故之后,百度未充,群僚常俸,并皆寡约,盖随时之义也。然退食在朝,而禄不代耕,非经通之制。今资储渐丰,可筹量增俸。」 ​ ​ ​ 驺虞见豫章。 ​ 夏四月,徙海西公于吴县西柴里。追贬庾后曰夫人。六月,遣使拜百济王馀句为镇东将军,领乐浪太守。戊子,前护军将军庚希举兵反,自海陵入京口,晋陵太守卞眈奔于曲阿。秋七月壬辰,桓温遣东海内史周少孙讨希,擒之,斩于建康市。己未,立会稽王昌明为皇太子,皇子道子为琅邪王,领会稽内史。是日,帝崩于东堂,时年五十三。葬高平陵,庙号太宗。遗诏以桓温辅政,依诸葛亮、王导故事。 ​ ​ ​ "2년 봄 정월 신축년, 백제와 림읍 왕이 각각 사신을 보내 방물을 공헌하였다. 2월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