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18세기 초반 서기 1720년 중국 청나라 강희제 시대(이 때 조선은 숙종) 청나라 수도 베이징의 똥 처리하는 법
서기 18세기 초반 서기 1720년 중국 청나라 강희제 시대(이 때 조선은 숙종) 청나라 수도 베이징의 똥 처리하는 법
[ 인가에는 변소가 없고 대소변을 모두 그릇에 받아서 버린다. 성안의 궁벽한 거리에는 가다가다 깊은 웅덩이가 있는데, 인가에서 분뇨를 버리는 곳이다. 이것이 차면 실어서 밭으로 쳐낸다. 그 변 그릇은 요강 같거나 술 담는 그릇과 같아서, 우리나라 사람이 처음 보면 술그릇으로 알고 들이마신다. 호인(胡人)도 역시 우리나라 요강을 가져다가 밥그릇으로 썼다니 참으로 똑같은 일이다. (人家無溷厠。二便皆器受而棄之。城內僻巷。往往有深窖。卽人家棄糞處也。滿則輦出于田。其溺器形如鳧。口如酒鐺。我國人初見。或認作酒器而吸之。胡人亦得我國溺缸作飯器。眞是對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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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중국 수도 베이징의 사람들은 변소가 없음. 똥을 그릇에 싸고, 그걸 웅덩이나 밭에 버림.
만주족(=호인=胡人) 조차도 저런 문화가 없음. 중국에만 있는듯한 문화인 것처럼 적고 있다.
참고로 고고학적으로 밝혀진 바로는 백제는 똥을 그릇에 쌈.
(첨부 사진 : 말기 백제 수도 사비성(부여시)의 오늘날 부여시 군수리에서 출토된 변기)
아마 백제도 청나라 시절 중국처럼 변소가 없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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