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024의 게시물 표시

사화주 사벌주 신라 말로 들판은 달

 사화주 사벌주 ... 신라 말로 들판은 '달' 관련 검색어 : 아사달  // 권 제8 신라본기 제8  >   신문왕(神文王)  >   11년 사화주에서 흰 참새를 바치다(0691년 (음)) 사화주에서 흰 참새를 바치다 ( 691년 (음) ) 沙火州獻白雀. 사화주(沙火州)註 001에서 흰 참새를 바쳤다.註 002 註 001 사화주(沙火州): 사화주는 사벌주(沙伐州)를 가리키며, 오늘날의 경북 상주시에 해당한다. 신라인들은 들(드르), 즉 들판을 ᄃᆞᆯ(달 또는 돌) 또는 ᄃᆞᆨ(닥 또는 독)으로 불렀고, 이것을 한자로 표기할 때에 같은 의미를 지닌 벌이나 부리의 표현을 빌어서, 벌의 경우는 그 음을 새겨 ‘伐’로, 부리의 경우는 그 음을 새겨 ‘弗’로, 그 뜻, 즉 훈(訓)을 새겨 ‘火’ 또는 ‘喙’로 각각 표기하였다(전덕재, 2009, 『신라 왕경의 역사』, 새문사, 54~55쪽). 오늘날 대구광역시 중구에 해당하는 달구벌(達句伐)을 달구화(達句火) 또는 달불(達弗) 혹은 달벌(達伐)로 표기하였고, 오늘날 경남 창녕에 해당하는 비사벌(比斯伐)을 비자화(比自火)라고 표기하였던 것에서 그 유례를 찾을 수 있다. 『삼국유사』 권제2 기이제2 후백제 견훤조에 “(견훤의) 아버지 아자개(阿慈介)는 농사를 지어 생활하였는데, 광계(光啓) 연간에 사불성(沙弗城) 지금〔고려〕의 상주(尙州)에 웅거(雄據)하여 스스로 장군(將軍)이라고 일컬었다.”고 전하는데, 이것을 통해 사벌주 또는 사화주를 사불주(沙弗州)라고도 표기하였음을 짐작해볼 수 있다. 사벌주의 변동에 대해서는 본서 권제4 신라본기제4 법흥왕 12년 2월조 참조. 註 002 흰 참새를 바쳤다: 『남제서(南齊書)』 권18 지(志)10 상서(祥瑞)조에 백작(白雀: 흰 참새)이 상서로운 새의 하나라고 밝히고 있다.

고구려의 진정한 계승자

고구려의 진정한 계승자 "도호부(都護府)가 이미 여러 번 옮겨져 옛 성은 신라(新羅)로 들어간 것이 많게 되었고 유민들은 돌궐(突厥)·말갈(靺鞨)에 분산되었다." 都護府旣屢遷, 舊城頗入新羅, 遺民散奔突厥靺鞨.  _선화봉사고려도경 신라가 고구려 혈통 많이 먹고 나머지는 돌궐,말갈(=발해말갈)이 먹음 돌궐 .. 투르크... 카자흐스탄 ... 터키.... 역시 그래서 터키가 형제의 나라이고 환빠들이 카자흐스탄에 그리 꽂히는건가. 이 기록 하나로 한국이 고구려의 계승자임과 발해가 한국사이고 터키,카자흐스탄은 한국의 형제 나라임이 증명되니 구절 하나 하나가 다 중요하구나!

백제 왕 여구가 난징 정권의 황제 사마욱(司马昱)에게 빌빌거리며 공물을 바치니 사마욱이 여구를 진동장군 겸 낙랑태수 겸 백제 왕으로 책봉하다.

 // 백제 왕 여구가 난징 정권의 황제 사마욱(司马昱)에게 빌빌거리며 공물을 바치니  사마욱이 여구를 진동장군 겸 낙랑태수 겸 백제 왕으로 책봉하다. ​ //고대 중국 기록 晋书 -> 帝纪第九 太宗简文帝 孝武帝 ​ 3  二年春正月辛丑,百济、林邑王各遣使贡方物。二月,苻坚伐慕容桓于辽东,灭之。三月丁酉,诏曰:「朕居阿衡三世,不能济彼时雍,乃至海西失德,殆倾皇祚。赖祖宗灵祗之德,皇太后淑体应期,籓辅忠贤,百官戮力,用能荡气务于昊苍,耀晨辉于宇宙。遂以眇身,托于王公之上,思赖群贤,以弼其阙。夫敦本息末,抑绝华竞,使清浊异流,能否殊贯,官无秕政,士无谤讟,不有惩劝,则德礼焉施?且强寇未殄,劳役未息,自非军国戎祀之耍,其华饰烦费之用皆省之。夫肥遁穷谷之贤,滑泥扬波之士,虽抗志玄霄,潜默幽岫,贪屈高尚之道,以隆协赞之美,孰与自足山水,栖迟丘壑,徇匹夫之洁,而忘兼济之大邪?古人不借贤于曩代,朕所以虚想于今日。内外百官,各勤所司,使善无不达,恶无不闻,令诗人元素餐之刺,而吾获虚心之求焉。」 癸丑,诏曰:「吾承祖宗洪基,而昧于政道,惧不能允厘天工,克隆先业,夕惕惟忧,若涉泉冰。赖宰辅忠德,道济伊望,群后竭诚,协契断金,内外尽匡翼之规,文武致匪躬之节,冀因斯道,终克弘济。每念干戈未戢,公私疲悴,籓镇有疆理之务,征戍怀东山之勤,或白首戎阵,忠劳未叙,或行役弥久,担石靡储,何尝不昧旦晨兴,夜分忘寝。虽未能抚而巡之,且欲达其此心。可遣大使诣大司马,并问方伯,逮于边戍,宣诏大飨,求其所安。又筹量赐给,悉令周普。」乙卯,诏曰:「往事故之后,百度未充,群僚常俸,并皆寡约,盖随时之义也。然退食在朝,而禄不代耕,非经通之制。今资储渐丰,可筹量增俸。」 ​ ​ ​ 驺虞见豫章。 ​ 夏四月,徙海西公于吴县西柴里。追贬庾后曰夫人。六月,遣使拜百济王馀句为镇东将军,领乐浪太守。戊子,前护军将军庚希举兵反,自海陵入京口,晋陵太守卞眈奔于曲阿。秋七月壬辰,桓温遣东海内史周少孙讨希,擒之,斩于建康市。己未,立会稽王昌明为皇太子,皇子道子为琅邪王,领会稽内史。是日,帝崩于东堂,时年五十三。葬高平陵,庙号太宗。遗诏以桓温辅政,依诸葛亮、王导故事。 ​ ​ ​ "2년 봄 정월 신축년, 백제와 림읍 왕이 각각 사신을 보내 방물을 공헌하였다. 2월에...

구한 말 을사오적에 맞서자는 의병장 면암 최익현 선생의 발언

구한 말 을사오적에 맞서자는 의병장 면암 최익현 선생의 발언 "철로(鐵路)는 저들이 우리나라를 멸망시키려는 수단의 한 가지인데 매일 기차를 타는 자가 다 실을 수 없을 정도이니, 어찌 우리 백성의 어리석음이 이리도 심하단 말인가. 생각해 보건대, 각처에서 하루에 차를 타는 비용이 어찌 천만만 되겠는가. " 。鐵路者。彼所以滅人國之一事。而每日乘車者。車不能容。何吾民之愚。至於是耶。試思各處。一日乘車之費。何啻以千萬計。 _고전번역서 > 면암집 > 면암선생문집 제16권 > 잡저 >  "기차 타지마라" 뭔 소리여 기차 탈꺼여 !!! 저리 비켜! 아 아니 저 저런 고오얀 놈 역시 아랫것들은...!

매천집의 거북선 얘기

매천집의 거북선 얘기  // 매천집 제1권 / 시(詩)○갑신고(甲申稿) 이 충무공 귀선가〔李忠武公龜船歌〕 [DCI]ITKC_BT_0660A_0030_080_0070_2011_001_XML DCI복사 URL복사 천구가 달을 먹으니 큰 바다가 말라붙고 / 天狗蝕月滄溟竭 만리 멀리 거센 바람에 부상이 꺾이었네 / 罡風萬里扶桑折 문경 새재 주흘산 웅장한 관문이 무너지자 / 主屹雄關已倒地 왜병 십만의 수군이 마구 쳐들어올 제 / 舟師十萬仍豕突 원씨 집 노장은 한낱 고기 자루에 불과하여 / 元家老將一肉袋 외로이 섬에 숨으니 개미 구원도 끊어졌네 / 孤甲棲島蚍蜉絶 국토방위의 중대한 위임 너 나 할 것 없거니 / 封疆重寄無爾我 거룻배를 어찌 진이 월 보듯 할 수 있으랴 / 葦杭詎可秦視越 전라 좌수영 남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 左水營南門大開 둥둥둥 북 울리며 거북선을 발진시키니 / 淵淵伐鼓龜船出 거북 같으나 거북 아니요 배 같으나 배도 아니요 / 似龜非龜船非船 판옥은 푹 솟은 데다 큰 물결을 소용돌이쳐대네 / 板屋穹然碾鯨沫 네 발은 수레바퀴처럼 빙글빙글 돌게 하고 / 四足環轉爲車輪 양쪽 옆구리엔 비늘을 펼쳐 창 구멍을 만들고 / 兩肋鱗張作槍穴 스물네 개의 노를 물속에서 춤추듯 저어라 / 二十四棹波底舞 노 젓는 수군은 수면 아래서 앉고 눕고 하였네 / 棹夫坐臥陽侯窟 코로는 검은 연기 내뿜고 눈은 붉게 칠하여 / 鼻射黑烟眼抹丹 펴면 헤엄치는 용 같고 움츠리면 거북 같은데 / 伸如遊龍縮如鼈 왜놈들 하늘만 쳐다보며 통곡하고 애태워라 / 蠻子喁喁哭且愁 노량 한산 대첩에서 붉은 피가 넘쳐흘렀지 / 露梁閒山漲紅血 적벽의 소년은 때를 만난 게 요행이었고 / 赤壁少年逢時幸 채석의 서생은 담대한 결단을 과시했지만 / 采石書生誇膽決 누가 바다를 횡행하며 백전을 치르면서 / 孰能橫海經百戰 고래 악어를 베고도 칼날이 여전할 수 있으랴 / 截鯨斬鰐鋩不缺 그로부터 이백 년 이후 지구가 터지고 찢겨 / 二百年來地毬綻 화륜선이 동으로 와서 화염이 태양을 가려라 / 輪舶東行焰韜日 범 같은 놈들이 양 ...

대조영 사극 1화에서 보던 그 장면이 정유재란 때도 있었군.

대조영 사극 1화에서 보던 그 장면이 정유재란 때도 있었군. // ○ 청정 등의 군사가 함양(咸陽)에 이르렀는데, 선봉 수천 명이 진군하여 황석성(黃石城) 밑에 임박하여 통사(通事)를 시켜 개산(介山)을 불러 말하기를, “너의 부친이 여기 있으니 문을 열고 나와 보라.” 하였다. 백사림(白士霖)이 개산을 참수하여 성밖으로 내던졌다. 왜적이 말하기를, “비록 백 명의 개산을 죽인다 하더라도 우리가 무엇을 아깝게 여기겠는가?” 하였다. 다음날 적병이 고함쳐 말하기를, “성을 비어 두고 나가면 쫓아가 죽이지는 않겠다.” 하니 백사림이 줄을 타고 성에서 매달려 내려가고 군사는 무너져 달아났다. 적이 입성하여 마구 죽이니, 함양 군수(咸陽郡守) 조종도(趙宗道)ㆍ안음 현감(安陰縣監) 곽준(郭䞭) 등은 가족과 함께 죽었으며, 근처 첩입관(疊入官)과 장졸 등 죽은 자가 5백여 명에 달했다. 개산은 김해(金海) 사람이다. 아버지가 임진란 초부터 적에게 붙어 적이 성을 함락시키는 계책을 도왔다. ○淸正等兵至咸陽。先鋒數千。進迫黃石城下。使通使招介山曰。爾父來此。開門出見。白士霖斬介山。投之城外。賊曰。雖殺百介山。吾何惜焉。翌日賊兵呼曰。空城出去。則不爲追殺云。士霖縋城潰走。賊入城亂殺。咸陽郡守趙宗道安陰縣監郭䞭等。並家屬死之。近地疊入官將士被害者。多至五百餘名。介山金海人其父自亂初附賊助賊陷城之謀  _ 고전번역서 > 대동야승 > 난중잡록 > 난중잡록 3 > 최종정보 개산의 아버지는 김해 사람이다. 임진왜란 초부터 왜군에게 붙어 성마다 돌아다니며 투항을 권유하는 일을 맡았다. 개산은 아비와는 달리 조선군에 복무했다. 그런데 황석산성 성주로 보이는 백사림이 아비를 보고 동요하는 개산을 참수하여 성 밖으로 내던졌다. 왜군들은 백성들을 죽이지 않고 백성들을 인질로 잡아 황석산성 앞에 세워두고 잘 대해주며 투항을 권유하니 성내의 민심이 동요한 듯하다. 등신같은 백사림이 툼레이더 라라 크로프트 빙의하고 줄을 타고 달아나니 군사가 모조리 무너져 달아나  마침내 황석산성이 함락되었다...

대마도 지방장관 등원친광이 타이라를 피해 고려로 도망갔다가 돌아오다.

  대마도 지방장관 등원친광이 타이라를 피해 고려로 도망갔다가 돌아오다. //사료 : 오처 경(아즈마 카가미) 고려관련 일본사료 > 아즈마카가미(吾妻鏡) > 쓰시마의 지방장관이 난을 피해 고려로 가다 쓰시마의 지방장관이 난을 피해 고려로 가다 고토바 덴노(後鳥羽天皇) 겐랴쿠(元曆) 2년 5월 23일 정사(丁巳) 검색결과 보기 이전 검색결과 다음 검색결과 상위로 가기 이전으로 가기 다음으로 가기 출전(자료명) 아즈마카가미(吾妻鏡) 연대 정보 1185년(고려 명종 15) 5월 23일(음) / 6월 22일(양) 연관 고려측 기록 개요  이 자료는 1185년(고려 명종 15)에 쓰시마의 지방장관[對馬守] 후지와라노 지카미쓰(藤原親光)가 헤이시(平氏)의 공격을 우려하여 고려로 도망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카미쓰가 도망하자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賴朝)가 쓰시마 슈고닌(守護人) 가와치 요시나가(河內義長)로 하여금 빨리 귀국할 것을 종용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아즈마카가미(吾妻鏡)』 고토바 덴노(後鳥羽天皇) 겐랴쿠(元曆) 2년 6월 14일 기사에【연관사료】 지카미쓰가 일본으로 귀환할 때 고려 국왕이 공선(貢船) 3척에 귀한 보물을 실어 보냈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 배는 고려에서 일본에 보낸 공선(貢船)이라기보다는 고려를 왕래하던 쓰시마의 진봉선(進奉船)으로 추정되며, 배에 실은 보물 역시 쓰시마의 진봉에 대한 답례에 해당하는 회사품(回賜品)으로 볼 수 있다. 아울러 예전부터 쓰시마 상인을 비롯한 규슈 사람들이 고려의 김해(金海)를 왕래한 것으로 보아, 지카미쓰가 도망쳐 온 고려 지역은 김해[金州]일 가능성이 있다.  한편, 원문에는 23일 정사(廿三日丁巳)로 기록되어 있으나 1185년 5월 23일의 간지는 을사이다. 원문 廿三日丁巳. 參河守 範賴受二品之命, 爲對馬守親光迎, 可遣船於對馬嶋之處, 親光爲遁平氏攻, 三月四日渡高麗國云々, 仍猶可遣高麗之由, 下知彼嶋在廳等之間, 今日卽遣之, 當嶋守護人河內五郞義長同送狀於親光, 是平氏悉滅亡訖, 不成不審, 早...

고다이쇼 미나모토 요리토모가 소물자정을 보내 고려를 노략질하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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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다이쇼 미나모토 요리토모가 소물자정을 보내 고려를 노략질하게하다. ==테마 음악====== https://youtu.be/a6GaKDj_JLA?si=zCZ4aIxdGBID1rAL&t=178 ============== 고다이쇼(右大將)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賴朝)가 소물자정(小物資政)을 보내 고려를 노략질하게하다.  // 고려관련 일본사료 > 아즈마카가미(吾妻鏡) > 고려를 정벌했었다는 장수를 사로잡다 고려를 정벌했었다는 장수를 사로잡다 준토쿠 덴노(順德天皇) 겐랴쿠(建曆) 3년 5월 3일 계묘(癸卯) 검색결과 보기 이전 검색결과 다음 검색결과 상위로 가기 이전으로 가기 다음으로 가기 출전(자료명) 아즈마카가미(吾妻鏡) 연대 정보 1213년(고려 강종 2) 5월 3일(음) / 1213년 5월 24일(양) 연관 고려측 기록 개요  이 자료는 1213년(고려 강종 2)의 기록으로 호조(北條) 정권 시기에 아사이 사부로 요시히데(朝夷三郎義秀, 혹은 아사히나 사부로 요시히데(朝比奈三郎義秀))에게 토벌당한 진제이(鎭西) 사람 소물자정(小物資政)이 죽은 고다이쇼(右大將)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賴朝) 때에 고려를 정벌한 대장군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요시히데는 아버지 와다 요시모리(和田義盛)와 함께 호조 도키마사(北條時政)에 투항하였었는데, 1213년(겐랴쿠(建曆) 3)에 반란을 일으켰다가 처절하게 패배하여 멸문당하였다. 『조쿠혼초쓰간(續本朝通鑑)』 준토쿠 덴노(順德天皇) 겐랴쿠(建曆) 3년 5월 3일 기사에서【연관사료】 쓰시마 사람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와다 요시모리의 아들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요시히데는 바다를 건너 고려의 부산포(釜山浦)로 도망쳐 갔다. 그런데 그곳 사람들이 요시히데의 용맹함에 탄복하여 그가 죽은 후에 신사(神社)를 세워주었으며, 조이명사(朝夷名社)로 불렀다는 것이다. 요시히데가 부산포로 왔다는 쓰시마의 전승을 사실로 보기는 어렵지만, 일본의 규슈나 쓰시마 지역이 한반도 남부와 적지 않게 교역이나 인...

일본 기록 고콘초몬주의 충격적 기록. 미나모토 요리토모가 고려를 정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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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기록 고콘초몬주의 충격적 기록. 미나모토 요리토모가 고려를 정벌하다 정도전의 군제 개혁 상소에서 뜻하지않게 나타난 역사의 비밀..., 고려 말 조선 초 외의 다른 고려시대에도 일본군의 침입이 있었다고 말하는듯한 정도전 ===테마 음악======== https://youtu.be/a6GaKDj_JLA?si=zPlZCBZz4PkixzAp ================== // 태조실록 5권, 태조 3년 2월 29일 기해 5번째기사 1394년 명 홍무(洪武) 27년군제 개정에 관한 판의흥삼군부사 정도전의 상서문국역원문.원본 보기 판의흥삼군부사(判義興三軍府事) 정도전(鄭道傳) 등이 상서(上書)하였다. "예로부터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은 문(文)으로써 다스림을 이루게 되고, 무(武)로써 난리를 평정하게 되니, 문무(文武) 양직(兩職)은 사람의 두 팔과 같으므로, 한 쪽만을 두고 한 쪽은 버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본조(本朝)에는 이미 백사(百司) 서부(庶府)가 있고, 또 제위(諸衛) 각령(各領)이 있으니, 문무(文武)의 관직을 귀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병(府兵)의 제도는 대개 전조(前朝)의 그전 것을 계승하였는데, 전조의 성시(盛時)에도 다만 부병(府兵) 외에 다른 군호(軍號)는 없었기 때문에, 북쪽에는 큰 요(遼)나라가 있고 동쪽에는 여진(女眞)과 일본(日本)이 있어 밖에서 침략(侵掠)했으며, 또 초적(草賊)이 있어 때때로 나라안에서 도둑질하니, 사건이 작으면 중랑장(中郞將) 이하를 보내고, 사건이 크면 상장군(上將軍)과 장군(將軍)을 보내어 이를 방어하게 하고, 부득이한 경우에 이르게 된 뒤에는 군현(郡縣)의 군사를 징발하여 밖의 적을 공격하고 안의 국토를 지키게 하여 4백여 년이나 전하여 왔으니, 그 당시 부병(府兵)의 강성(强盛)함을 알 수가 있습니다. 사변(事變)이 없으면 병법(兵法)을 익히게 하고, 사변이 있어 군대를 출동시키면 반드시 오진(五陣)으로 하였으니, 그 당시 병법의 익힘도 또한 알 수가 있습니다. 충렬왕(忠烈王)이 원(元)나...

고려사 왕건 세가_왕건의 즉위 조서

 고려사 > 세가 권제1 > 태조(太祖) 원년 > 6월 > 태조가 조서를 내리고 신하들이 사례하다 원문 국역글자 크게글자 작게이전 기사다음 기사출력 글자 크게글자 작게 태조가 조서를 내리고 신하들이 사례하다 丁巳 詔曰, “前主當四郡土崩之時, 剷除寇賊, 漸拓封疆. 未及兼幷海內, 俄以酷暴御衆, 以姦回爲至道, 以威侮爲要術. 徭煩賦重, 人耗土虛. 而猶宮室宏壯, 不遵制度, 勞役不止, 怨讟遂興. 於是, 竊號稱尊, 殺妻戮子, 天地不容, 神人共怨, 荒墜厥緖, 可不戒乎? 朕資群公推戴之心, 登九五統臨之極, 移風易俗, 咸與惟新. 宜遵改轍之規, 深鑑伐柯之則. 君臣諧魚水之歡, 河海協晏淸之慶, 內外群庶, 宜悉朕懷.” 群臣拜謝曰, “臣等値前主之世, 毒害良善, 淫虐無辜, 老稚嗷嗷, 莫不含寃. 幸今得保首領, 遭遇聖明, 敢不竭力, 以圖報效.” 글자 크게글자 작게 태조가 조서를 내리고 신하들이 사례하다 정사 조서를 내려 이르기를, “궁예[前主]는 4군(四郡)이 흙 무너지듯 무너지는 때를 맞아 도적의 무리를 제거하고 점점 영토를 넓혀갔다. 그러나 천하[海內]를 다 아우르는 데 미치지 못하고 갑자기 잔혹함과 포악함으로 백성을 다스렸으며, 간사함[姦回]을 가장 올바른 것[至道]으로 여기고 위협과 업신여김을 중요한 방법으로 삼았다. 요역(徭役)이 번거롭고 부세(賦稅)가 무거워 사람은 줄어들고 땅은 텅 비었다. 그런데 오히려 궁실만은 크고 장대하며 옛 제도를 따르지 않고 힘든 요역이 그치지 않으니 원망과 비난이 드디어 일어난 것이다. 이에 〈더하여〉 함부로 연호(年號)를 정하고 황제라 일컬었으며[稱尊] 처자를 살육하였으니, 하늘과 땅이 용납하지 못하고 귀신과 사람이 함께 원한을 품어 왕업의 기반을 송두리째 추락시켰으니[荒墜厥緖] 경계하지 않을 수 있으랴? 나는 여러 공(公)의 추대하는 마음에 힘입어 가장 높은 자리[九五]에서 관할하는 궁극에 올랐으니, 나쁜 풍속을 좋게 고치고 모든 것을 다함께 새롭게 만들려 한다[咸與惟新]. 마땅히 법도를 고칠 규범을 쫓을 것이며 깊이 가까...

고려사 태조 세가_후당이 왕건의 조상을 장회무족이라 부름

고려사 태조 세가_후당이 왕건의 조상을 장회무족이라 부름  // 고려사 > 世家 卷第二 > 太祖 16年 > 3월 > 후당에서 왕을 책봉하는 조서를 내리다 원문 국역글자 크게글자 작게다음 기사출력 글자 크게글자 작게 후당에서 왕을 책봉하는 조서를 내리다 (癸巳)十六年 春三月 辛巳 唐遣王瓊·楊昭業來冊王, 詔曰 “王者法天而育兆庶, 體地而安八紘, 允執大中, 式彰無外. 斗極正而衆星咸拱, 溟渤廣而百谷皆宗. 所以居戴履之倫, 窮照臨之境, 弘道修德, 恭己虛懷. 歸心者, 睠爲王人, 嚮化者, 被以風敎. 由是, 擧封崇之命, 稽旌賞之文, 垂於古先, 罔敢失墜. 其有地, 稱平壤, 師擅兼材. 統五族之强宗, 控三韓之奧壤, 務權鎭靜, 志奉聲明, 爰協彛章, 是加寵數. 咨! 爾權知高麗國王事建! 身資雄勇, 智達機鈴, 冠邊城以挺生, 負壯圖而閒出. 山河有授, 基址克豊. 踵朱蒙啓土之禎, 爲彼君長, 履箕子作蕃之跡, 宣乃惠和. 俗厚知書, 故能導之以禮義, 風驍尙武, 故能肅之以威嚴. 提封於是謐寧, 生聚以之完輯. 而復行及唇齒, 分篤皮毛. 忿黠虜之挻祅, 恤隣邦而救患. 矧以披肝效順, 秉節納忠, 慕仁壽以康時, 識文思之撫運. 航深梯險, 輸贐貢琛, 繼陳述職之儀, 茂著勤王之業. 夫推至誠而享豊報, 道之常也, 奠眞封而顯列國, 禮之大也. 勞有所至, 朕無愛焉. 今遣使太僕卿王瓊, 使副大府少卿兼通事舍人楊昭業等, 持節備禮, 冊命爾爲高麗國王. 於戱! 作善, 天降之祥, 守正, 神祚之福. 干戈, 愼於危事, 文軌, 資於遠謀, 永爲唐臣, 世服王爵. 往踐厥位, 汝惟欽哉.” 색인어 이름王瓊,楊昭業,權知高麗國王事建,朱蒙,箕子,王瓊,楊昭業,高麗國王 지명平壤 관직太僕卿,大府少卿,通事舍人 글자 크게글자 작게 후당에서 왕을 책봉하는 조서를 내리다 〈계사〉 16년(933) 봄 3월 신사 후당(後唐)에서 왕경(王瓊)과 양소업(楊昭業)을 보내 왕을 책봉하였다. 조서에 이르기를, “왕이라는 것은 하늘을 본받아 온 백성을 기르고 땅을 본떠 천하[八紘]를 편안하게 하는 존재이니, 성실히 큰 중용(中庸)의 도를 지켜 온 천하에 드러나지 않...

신오대사 고려전_당나라 말엽 고려 왕으로 고씨가 있었다.

신오대사 고려전_당나라 말엽 고려 왕으로 고씨가 있었다. //목차  고려(高麗) 高麗는 본래 扶餘人의 別種이다. 長興 3년(A.D.932; 高麗 太祖 15)에 權知國事 王建이 사신을 보내오니, 開運 2년(A.D.945; 高麗 惠宗 2)에 建이 卒하자 그 땅에서는 銅·銀 등이 생산되었다. 高麗 사람들은 文字를 알고 글읽기를 좋아한다. //내용 // ○ 新五代史註 001 卷七十四 四夷附錄註 002 第三 高麗註 003 高麗, 本扶餘人校勘 001之別種也.註 004 其國地·君世見於校勘 002唐,註 005 比佗夷狄有姓氏,註 006 而其官號略可曉其義.註 007 當唐之末, 其王姓高氏.註 008 同光元年校勘 003 , 遣使廣評侍郞校勘 004註 009韓申一註 010·副使春部少卿註 011朴巖 校勘 005註 012來校勘 006, 而其國王姓名, 史失不紀. 校勘 001 「藝文本」에는 없다. 校勘 002 「藝文本」에는 ‘于’로 되어 있다. 校勘 003 「藝文本」에는 ‘二年’으로 되어 있고, 「藝文本」所引『五代會要』에는 ‘三年十一月’로 되어 있다. 校勘 004 「藝文本」所引『五代會要』에는 ‘郞’ 다음에 ‘上柱國’의 3字가 더 있다. 校勘 005 「藝文本」에는 ‘嚴’으로 되어 있다. 校勘 006 「藝文本」所引『五代會要』에는 ‘來’ 다음에 ‘貢方物’의 3字가 더 있다. ==원문======================= ○ 新五代史 註  001  卷七十四 四夷附錄 註  002  第三 高麗 註  003 高麗, 本扶餘 人 校勘  001 之別種也. 註  004  其國地·君世見 於 校勘  002 唐, 註  005  比佗夷狄有姓氏, 註  006  而其官號略可曉其義. 註  007  當唐之末, 其王姓高氏. 註  008  同光 元年 校勘  003  , 遣使廣評侍 郞 校勘  004 註  009 韓...

신오대사 고려전_후당 황제 명종이 왕건을 현토군 총독에 책봉하다.

  신오대사 고려전_후당 황제 명종이 왕건을 현토군 총독에 책봉하다. //목차  고려(高麗) 高麗는 본래 扶餘人의 別種이다. 長興 3년(A.D.932; 高麗 太祖 15)에 權知國事 王建이 사신을 보내오니, 開運 2년(A.D.945; 高麗 惠宗 2)에 建이 卒하자 그 땅에서는 銅·銀 등이 생산되었다. 高麗 사람들은 文字를 알고 글읽기를 좋아한다. ============= ○ 至長興 三年(932) 校勘  007  , 權知國事 註  013 王建遣使者來, 明宗乃拜建  玄菟州都督, 充大義軍使, 封高麗國王 校勘  008 註  014 . 建, 高麗大族也. 註  015 校勘 007 「百衲本」에는 ‘二年’으로 되어 있다. 校勘 008 『册府』卷965 「外臣部」封册條에는 ‘特進簡較太保使持節玄莬州都督上柱國封高麗國王充大義軍使’로 되어 있다. 玄은「藝文本」에는 ‘元’으로 되어 있다. 註 013 權知國事 : 王號를 인정받지 못하는 동안에 使用한 王의 稱號. 一名 權署國事, 權知國王事라고도 한다. 高麗 以後 우리나라는 國王이 卽位하면 中國에 上奏하여 承認을 받아야 王號를 使用하는 習慣이 있었다. 高麗 太祖 王建은 ‘權知高麗國王事’라는 稱號를 썼고, 朝鮮 太祖 李成桂는 明의 承認을 要求할 때 ‘權知高麗國事’라는 稱號를 썼으며, 中宗 때는 明에서 中宗을 權知國事로 承認하였다가 後에 王號를 承認하였고, 宣祖는 明宗이 崩御했을 때 한동안 權知國事의 稱號를 쓴 일이 있다. ≪參考文獻≫ 『高麗史』卷1「世家」1 太祖條. 『朝鮮王朝實錄』太祖·中宗·明宗實錄. 註 014 明宗乃拜建玄菟州都督 充大義軍使 封高麗國王 : 933年(後唐 明宗 長興 4, 高麗 太祖 16) 後唐의 王瓊, 楊昭業이 와서 太祖 王建을 ‘特進檢交太保使持節玄菟州都督上柱國充大義軍使’를 授爵하고 同時에 高麗國王으로 封册하였다. 明宗이 내린 詔文은 다음과 같다. (前略)又詔曰 卿長淮茂族 漲海雄蕃 以文武之才 控玆土宇 以忠孝之節 來禀化風貞規旣篆於旗常 寵數是覃於簡册 如綸如...

삼국유사_왕건의 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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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_왕건의 반란 ============= 貞明四年戊寅,  䥫原京 衆心忽變, 推戴我 太祖 即位.  萱 聞之遣使稱賀, 遂獻孔雀扇 地理山 竹箭等.  萱 與我 太祖 陽和隂尅獻驄馬扵 太祖 , 三年冬十月 萱 率三千騎至曹物城  今未詳 .  太祖 亦以精兵來與之角.  萱 兵銳未决勝負.  太 校勘  183 祖 欲權和以老其師, 移書乞和以堂弟 王信 為質,  萱 亦以外甥 真虎 交質. 十二月攻取居西  今未詳 等二十餘城, 遣使入 後唐 稱藩.  唐 䇿授撿校太尉兼侍中判百濟軍事, 依前都督行全州刺史海東四面都統指揮兵馬判置等事百濟王, 食邑二千五百户. 校勘 183 조병순소장본에는 大로 되어 있다. 문맥상 太가 옳다. =========== =================== 貞明四年戊寅, 䥫原京衆心忽變, 推戴我太祖即位. 萱聞之遣使稱賀, 遂獻孔雀扇地理山竹箭等. 萱與我太祖陽和隂尅獻驄馬扵太祖, 三年冬十月萱率三千騎至曹物城 今未詳. 太祖亦以精兵來與之角. 萱兵銳未决勝負. 太校勘 183祖欲權和以老其師, 移書乞和以堂弟王信為質, 萱亦以外甥真虎交質. 十二月攻取居西 今未詳等二十餘城, 遣使入後唐稱藩. 唐䇿授撿校太尉兼侍中判百濟軍事, 依前都督行全州刺史海東四面都統指揮兵馬判置等事百濟王, 食邑二千五百户. 校勘 183 조병순소장본에는 大로 되어 있다. 문맥상 太가 옳다. ================= ============ 주제분류정치>외교>절교>나라 색인어이름 : 太祖, 萱, 太校勘 183祖, 王信, 真虎 지명 : 䥫原京, 地理山 국명 : 後唐, 唐 =============== ============== 정치>외교>절교>나라 이름 :  太祖 ,  萱 ,  太 校勘  183 祖,  王信 ,  真虎 지명 :  䥫原京 ,  地理山 국명 :  後唐 ,  唐 =============== 삼국유사 권 제2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