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오대사 고려전_후당 황제 명종이 왕건을 현토군 총독에 책봉하다.
신오대사 고려전_후당 황제 명종이 왕건을 현토군 총독에 책봉하다.
//목차
고려(高麗)
高麗는 본래 扶餘人의 別種이다.
長興 3년(A.D.932; 高麗 太祖 15)에 權知國事 王建이 사신을 보내오니,
開運 2년(A.D.945; 高麗 惠宗 2)에 建이 卒하자
그 땅에서는 銅·銀 등이 생산되었다.
高麗 사람들은 文字를 알고 글읽기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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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至長興三年(932)校勘 007 , 權知國事註 013王建遣使者來, 明宗乃拜建 玄菟州都督, 充大義軍使, 封高麗國王校勘 008註 014. 建, 高麗大族也.註 015
校勘 007 「百衲本」에는 ‘二年’으로 되어 있다.
校勘 008 『册府』卷965 「外臣部」封册條에는 ‘特進簡較太保使持節玄莬州都督上柱國封高麗國王充大義軍使’로 되어 있다. 玄은「藝文本」에는 ‘元’으로 되어 있다.
註 013 權知國事 : 王號를 인정받지 못하는 동안에 使用한 王의 稱號. 一名 權署國事, 權知國王事라고도 한다. 高麗 以後 우리나라는 國王이 卽位하면 中國에 上奏하여 承認을 받아야 王號를 使用하는 習慣이 있었다. 高麗 太祖 王建은 ‘權知高麗國王事’라는 稱號를 썼고, 朝鮮 太祖 李成桂는 明의 承認을 要求할 때 ‘權知高麗國事’라는 稱號를 썼으며, 中宗 때는 明에서 中宗을 權知國事로 承認하였다가 後에 王號를 承認하였고, 宣祖는 明宗이 崩御했을 때 한동안 權知國事의 稱號를 쓴 일이 있다.
≪參考文獻≫
『高麗史』卷1「世家」1 太祖條.
『朝鮮王朝實錄』太祖·中宗·明宗實錄.
註 014 明宗乃拜建玄菟州都督 充大義軍使 封高麗國王 : 933年(後唐 明宗 長興 4, 高麗 太祖 16) 後唐의 王瓊, 楊昭業이 와서 太祖 王建을 ‘特進檢交太保使持節玄菟州都督上柱國充大義軍使’를 授爵하고 同時에 高麗國王으로 封册하였다. 明宗이 내린 詔文은 다음과 같다.
(前略)又詔曰 卿長淮茂族 漲海雄蕃 以文武之才 控玆土宇 以忠孝之節 來禀化風貞規旣篆於旗常 寵數是覃於簡册 如綸如綍 已成虎穴之榮 宜室宜家 足顯鵲巢之羙 俾頒湯沐 以慶絲蘿 永光輔佐之功 式恊優隆之命 諒卿誠素 知我渥恩 卿妻柳氏 今封河東郡夫人 又賜三軍將吏等 詔曰 朕以王建星雲禀秀 金石輸誠 信義着於睦隣 忠孝彰於事大 領三韓之樂土 每奉周正 越萬里之洪波 常陳禹貢 勳名已顯 爵秩未崇 宜寵錫以桐圭 俾眞封於桃野 今封授高麗國王 差使往彼 備禮册命 便令慰諭想宜知悉
≪參考文獻≫
『高麗史』卷2「世家」2 太祖 16年 3月條.
金渭顯, 『高麗史中中韓關係史料彙編』1983.
註 015 高麗大族也 : 王氏의 種族은 實相 大族은 아니었고 新興의 名族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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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오대사(新五代史) > 사이부록(四夷附錄) > 고려(高麗) > 長興 3년(A.D.932; 高麗 太祖 15)에 權知國事 王建이 사신을 보내오니,
○ 長興 3년(A.D.932; 高麗 太祖 15) 에 權知國事註 013 王建이 사신을 보내오니, [後唐] 明宗은 즉시 建을 玄菟州都督으로 除拜하고, 大義軍使에 充任하는 동시에 高麗國王으로 책봉하였다.註 014 [王]建은 高麗의 大族이다.註 015
註 013
權知國事 : 王號를 인정받지 못하는 동안에 使用한 王의 稱號. 一名 權署國事, 權知國王事라고도 한다. 高麗 以後 우리나라는 國王이 卽位하면 中國에 上奏하여 承認을 받아야 王號를 使用하는 習慣이 있었다. 高麗 太祖 王建은 ‘權知高麗國王事’라는 稱號를 썼고, 朝鮮 太祖 李成桂는 明의 承認을 要求할 때 ‘權知高麗國事’라는 稱號를 썼으며, 中宗 때는 明에서 中宗을 權知國事로 承認하였다가 後에 王號를 承認하였고, 宣祖는 明宗이 崩御했을 때 한동안 權知國事의 稱號를 쓴 일이 있다.
≪參考文獻≫
『高麗史』卷1「世家」1 太祖條.
『朝鮮王朝實錄』太祖·中宗·明宗實錄.
註 014
明宗乃拜建玄菟州都督 充大義軍使 封高麗國王 : 933年(後唐 明宗 長興 4, 高麗 太祖 16) 後唐의 王瓊, 楊昭業이 와서 太祖 王建을 ‘特進檢交太保使持節玄菟州都督上柱國充大義軍使’를 授爵하고 同時에 高麗國王으로 封册하였다. 明宗이 내린 詔文은 다음과 같다.
(前略)又詔曰 卿長淮茂族 漲海雄蕃 以文武之才 控玆土宇 以忠孝之節 來禀化風貞規旣篆於旗常 寵數是覃於簡册 如綸如綍 已成虎穴之榮 宜室宜家 足顯鵲巢之羙 俾頒湯沐 以慶絲蘿 永光輔佐之功 式恊優隆之命 諒卿誠素 知我渥恩 卿妻柳氏 今封河東郡夫人 又賜三軍將吏等 詔曰 朕以王建星雲禀秀 金石輸誠 信義着於睦隣 忠孝彰於事大 領三韓之樂土 每奉周正 越萬里之洪波 常陳禹貢 勳名已顯 爵秩未崇 宜寵錫以桐圭 俾眞封於桃野 今封授高麗國王 差使往彼 備禮册命 便令慰諭想宜知悉
≪參考文獻≫
『高麗史』卷2「世家」2 太祖 16年 3月條.
金渭顯, 『高麗史中中韓關係史料彙編』1983.
註 015
高麗大族也 : 王氏의 種族은 實相 大族은 아니었고 新興의 名族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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