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023의 게시물 표시

제왕운기 왕건의 반란 관련 중요한 힌트가 있는 사료

 제왕운기 왕건의 반란 관련 중요한 힌트가 있는 사료  // 제왕운기 > 제왕운기(帝王韻紀) 권하(卷下) > 본조군왕세계연대(本朝君王世系年代) > 태조(太祖)【휘(諱)는 건(建)이며...】 원문 국역글자 크게글자 작게이전 기사다음 기사출력 글자 크게글자 작게 太祖除元帥. 不戰服諸方 太祖諱建, 諡神聖大王 除元帥, 不戰服諸方, 功業昌而熾. 裔乃日肆虐, 民心如鼎沸. 惟時四功臣,裴玄慶, 洪儒, 卜智謙, 申崇謙也., 深嗟塗炭墜. 契丹神冊三, 朱梁貞明四, 戊寅六月望, 端然同擧義, 詣我太祖家,今奉先寺也, 推戴卽大位. 不期而會者, 三千步與騎, 若旱之望雲, 四方爭傒喜. 徂征十八年, 三韓同一軌.功與定難功臣, 多不盡擧. 但錄初起時, 崔疑, 庾黔弼. 垂衣八年間, 文物禮樂備. 惠諱武, 元年癸卯, 石晉大祖, 天福八年, 遼太宗, 會同六年也. 配臣, 朴述希, 金堅述. 定諱堯, 元年乙巳, 晉小帝, 開運二年, 遼太宗, 會同八年也. 配臣, 王式謙. 及光宗,諱昭, 元年己酉, 漢隱帝, 乾祐二年, 遼世宗, 天祿三年也. 始有科擧, 命王融, 取崔居業等七人. 配臣, 劉新成, 徐弼., 皆是祖之子. 或三或五年, 或三九臨莅. 景是光之子, 七載作天吏.諱伷, 元年乙亥, 趙宋大祖, 開寶八年, 遼景宗, 保寧七年也. 臨軒親試, 取高疑等六人, 天場從此而始. 配臣, 崔知夢, 朴良侕. 有繼得追封, 祖子戴安是, 戴子曰成宗, 臨軒十七祀.諱治, 元年辛巳, 宋太宗, 興國六年, 遼景宗, 乾通三年也. 配臣, 崔承老, 崔亮, 李智伯, 徐熙. 景子穆十三,諱誦, 元年丁酉, 宋太宗, 至道三年. 遼聖宗, 統和十五年也. 配臣, 韓彦公, 金承祚, 崔肅., 金智陽媱恣. 康兆西京來, 安子顯宗起. 中興二十三,諱詢, 元年己酉, 宋眞宗, 祥符二年, 遼聖宗, 統和二十七年也. 配臣, 姜邯酇, 崔沆, 崔士威, 王可度, 河拱辰., 後有王聖嗣. 德何止四年,諱欽, 元年辛未, 宋仁宗, 天聖九年, 遼興宗, 重熙元年也. 配臣, 柳歆., 彩羽來呈瑞. 靖享十三秋,諱亨, 元年甲戌, 宋仁宗, 景祐二年. 遼興宗, 重熙四年也. 配臣, 徐訥, 黃周亮,...

고려 무인시대 궁궐 파이어 쇼

 고려 무인시대 궁궐 파이어 쇼 // 고려사 > 지志 권제7卷第七 > 오행五行 一 > 화 > 화재 > 궁궐에 불이 났으나 이의방 형제가 제때에 진화하지 않다 원문 국역글자 크게글자 작게이전 기사다음 기사출력 글자 크게글자 작게 궁궐에 불이 났으나 이의방 형제가 제때에 진화하지 않다 明宗元年十月壬子 夜, 宮闕災, 諸寺僧徒及府衛軍人, 詣闕將救火. 鄭仲夫·李俊儀等入直, 義方兄弟, 恐有變, 走入內, 閉紫城門, 不納諸救火者. 故殿宇悉火, 王出山呼亭, 痛哭. 색인어 이름明宗,鄭仲夫,李俊儀,義方 글자 크게글자 작게 궁궐에 불이 났으나 이의방 형제가 제때에 진화하지 않다 명종 원년(1171) 10월 임자 밤에 궁궐에 불이 나자 여러 절의 승려들과 부위(府衛)의 군인들이 궁궐로 가서 불을 끄려 하였다. 정중부(鄭仲夫)와 이준의(李俊儀) 등이 입직(入直)하고 있었지만, 이의방(李義方) 형제는 변란이 일어날까 두려워하여 안으로 달려들어가 자성문(紫城門)을 폐쇄하고 불을 끄러 온 이들을 들이지 않았다. 그래서 건물이 모두 불에 탔으므로 왕이 산호정(山呼亭)에 나와 통곡하였다. === 궁궐에 불이 나다. 불이야 불이야 여러 절의 승려들 : 아니 저것은 궁에서 일어나는 불길이 아닌가 어서 끄러가자 수도의 군인들 : 아니 저 저런 어서 우리가 소방관이 되어 불을 끄러가자 정중부 , 이준의 : 아니 이건 무슨 심상치않은 불길인가 하필 궁궐에서 우리가 근무 중일때에 아니 이런 ! 이의방 형제 : 으음 이건 수상하다 흠 소방관들을 들이지말라! 소방관들 : 문을 여시오! 자성문을 속히 여시오! 궁이 불타고 있소이다! 이의방 형제 : 시끄럽다 ! 썩 돌아가거라! 소방관들 : 이이이이 아이고 아이고 화르르르 화르르르르 왕 ‘명종’ : 아이고 아아아아 궁궐이 다 탔다 다 탔다 아이고오오 아아아아! (너무 열받아서 혼절)

금나라 기록 금사 조위총의 반란 고려 무인시대

 금나라 기록 금사 조위총의 반란 고려 무인시대 // 중국사서 고려·발해유민 기사 > 금사 > 『금사』권135 열전73 외국(外國)下 > 고려 조위총이 반란하여 내속하겠다고 하다 원문 국역글자 크게글자 작게이전 기사다음 기사출력 글자 크게글자 작게 고려 조위총이 반란하여 내속하겠다고 하다 〈大定〉十五年, 高麗西京留守趙位寵叛皓, 遣徐彦等九十六人上表曰,校勘 001 “前王本非避讓, 大將軍鄭沖夫·郞將李義方實弑之. 臣位寵請以慈悲嶺以西至鴨綠江四十餘城內屬, 請兵助援.” 上曰, “王皓已加封冊, 位寵輒敢稱兵爲亂, 且欲納土, 朕懷撫萬邦, 豈助叛臣爲虐?” 詔執徐彦等送高麗. 頃之, 王皓定趙位寵之亂, 遣使奏謝. 自位寵之亂, 皓所遣生日回謝·橫賜回謝·賀正旦·進奉·萬春節等使, 皆阻不通. 至是, 皓幷奏之. 詔答其意, 其合遣人使令節次入朝. 校勘 001 ‘徐彦’ 뒤 부분에 ‘寧’자가 衍文으로 기재되어 있다. 『金史』 卷61 表3 交聘表 中 大定 15年 9月 기사와 『高麗史』 卷19 世家19 明宗 6年 11月 壬子, 『高麗史』 卷100 列傳13 諸臣 趙位寵 기사에는 ‘徐彦’으로 기재되어 있다. 글자 크게글자 작게 고려 조위총이 반란하여 내속하겠다고 하다 〈대정(大定)〉 15년(1175)에 고려의 서경유수(西京留守) 조위총(趙位寵)이 왕호(王皓, 명종)에게 반란을 일으켜서 서언(徐彦) 등 96명을 보내어 표문(表文)을 올리기를, “전왕(前王, 의종)은 본래 〈왕위를〉 피하여 양위한 것이 아니고, 대장군(大將軍) 정중부(鄭沖夫)와 낭장(郞將) 이의방(李義方)이 사실 시해하였습니다. 신 조위총은 자비령(慈悲嶺) 서쪽에서부터 압록강(鴨綠江)에 이르는 40여 성(城)으로써 내속(內屬)하기를 청하오니, 청컨대 군사로 원조하여 주시옵소서.”라고 하였다. 상이 말하기를, “왕호에게 이미 책봉[封冊]을 더해주었는데 조위총이 갑자기 군대를 동원한다고 칭하고는 반란을 일으키고는 또 땅을 바치려 하고 있도다. 짐은 만방(萬邦)을 품에 품고 어루만져야 하는데 어찌 반란한 신하가 포학한 짓을 ...

고려사 제신 경대승전

 고려사 제신 경대승전 // 고려사 제신 경대승전 // 고려사 > 列傳 卷第十三 > 諸臣 > 경대승 > 경대승 원문 국역글자 크게글자 작게다음 기사출력 글자 크게글자 작게 경대승 慶大升, 淸州人, 父珍中書侍郞平章事. 大升膂力絶人, 早有大志, 不事家産. 年十五, 蔭補校尉, 累遷將軍. 珍性貪鄙, 多奪人田, 及卒, 大升悉以田案納選軍, 一無所取, 人服其淸. 明宗八年, 淸州人與州人係京籍而退居者構隙. 捕殺幾盡, 其黨之在京者聞之, 欲報仇, 矯旨募死士, 向淸州. 王遣將軍韓慶賴等, 追止之不及. 與州人戰不克, 死者百餘人. 時大升與大將軍朴純弼, 爲本州事審官, 以不能禁制見罷, 牧副使趙溫舒亦罷. 大升嘗憤鄭仲夫跋扈, 謀欲討之, 以其事艱大, 隱忍未發. 會仲夫子筠, 潛圖尙公主, 王患之. 大升銳意討仲夫, 畏其壻宋有仁, 未得閒, 及有仁斥逐文克謙·韓文俊, 大失人心, 朝臣皆側目. 牽龍許升有勇力, 爲衆所服, 筠愛之, 升及隊正金光立·俊翼, 又皆大升所善. 색인어 이름慶大升,珍,大升,珍,大升,明宗,韓慶賴,大升,朴純弼,趙溫舒,鄭仲夫,仲夫,筠,大升,仲夫,宋有仁,有仁,文克謙,韓文俊,許升,筠,升,金光立,俊翼,大升 지명淸州,淸州,淸州 관직中書侍郞平章事,校尉,將軍,將軍,大將軍,事審官,牧副使,牽龍,隊正 글자 크게글자 작게 경대승 경대승(慶大升)은 청주(淸州) 사람이며, 아버지 경진(慶珍)은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를 지냈다. 경대승은 완력이 남보다 뛰어났고, 일찍부터 큰 뜻을 품고서 집안의 살림살이는 신경 쓰지 않았다. 나이 15세에 음보(蔭補)로 교위(校尉)가 되었고, 여러 차례 승진하여 장군(將軍)이 되었다. 경진은 성품이 탐욕스럽고 야비하여 남들의 땅을 많이 빼앗았는데, 그가 죽자 경대승은 모든 전안(田案)을 선군(選軍)에 바치고 하나도 갖지 않아 사람들이 그의 청렴함에 감복하였다. 명종(明宗) 8년(1178) 청주 사람들과, 청주 사람이면서 개경(開京)에 적(籍)을 두고 살다가 〈청주로〉 물러나 살던 사람들 사이에 틈이 벌어졌다. 〈물러나 살던 사람들을〉 거의 다 잡아 죽이...

(펌)양직공도 백제국사재기

 (펌)양직공도 백제국사재기 양직공도 백제국사재기 양직공도(梁職貢圖)속의 백제국사(百濟國使) 제기(題記) 해석 - 개인적인 해석입니다.   양직공도(梁職貢圖)란 중국 남북조시대 양(梁)나라의 직공도(職貢圖)란 뜻으로, 먼저 직공도(職貢圖)가 뭔지에 대한 설명부터 하자면 다음과 같다.   직공도(職貢圖, ???, Illustration of Tribute Missions ?대만 고궁박물관- , Portraits of Periodical Offering ? 위키피디아 영문 직공도 설명(http://en.wikipedia.org/wiki/Zhigongtu) - , Zhi Gong Tu)란 중국에 조공하러 온 외국 사신의 형상, 복식 및 풍속 등을 그린 그림. 직공도의 직(職)은 직방(職方)의 약자로 중국의 관직이고 직공(職貢)은 직방공물(職方貢物)을 말하는 것으로 직공(職貢)은 그림으로, 조공품인 방물(方物)은 목록으로 남기는 것이 중국 왕조의 관례였다. 양직공도가 현재 전해지는 직공도 중 가장 오래된 것이고, 원나라 때 임백온(任伯溫) ? 생몰년 불상, 원나라 말기 화가 - 이 유목민족들이 말을 바치는 광경을 그린 직공도 ? 비단에 칼러, 폭 36.2cm, 길이 220.4cm, 미국샌프란시스코아시아미술관 소장-  가 있고, 또 중국 청나라 건륭 16년(1751) 황제의 명으로 각 지역 관리들이 관할지역내의 이민족들과 청나라와 왕래가 있는 국가에 대해 각 민족의 의복과 형상을 그린 황청직공도(皇?職貢圖) 9권이 대만 국립 고궁박물관(故宮博物館)에 소장되어 있다. 직공도의 개요에 대해서는 이진민, 남윤자, 조우현, <왕회도와 번객입조도에 묘사된 삼국사신의 복식연구>, 복식 제 51권 3호, 2001년 5월로, pp.155-170 참조. (이 논문은 국가지식포털(http://www.knowledge.go.kr/)에서 검색 및 다운로드 가능.)    양직공도(梁職貢圖): 현재 전해지는 6세기의 직공도(職貢圖)...

삼국지 동이전 부여편 1장

 삼국지 동이전 부여편 1장  // ○ 부여전夫餘傳 1장 :  夫餘在長城之北, 去玄菟千里, 부여란 나라가 있는데 그 나라는 ‘장성長城(중국 한漢나라의 엄청 긴 국경 장벽)’의 북쪽에 있고 현토玄菟(중국의 식민지)로부터 1000리 떨어져 있다. 南與高句麗, 東與挹婁, 西與鮮卑接,  남쪽은 고구려高句驪와, 동쪽은 읍루挹婁와, 서쪽은 선비鮮卑와 접해 있고,  北有弱水, 북쪽에는 弱水가 있다. 方可二千里. [국토의 면적은]방 2천 리가 되며,  戶八萬, 其民土著, 有宮室·倉庫·牢獄. 多山陵·廣澤, 於東夷之域最平敞.  土地宜五穀, 不生五果. 其人麤大, 性彊勇謹厚, 不寇鈔. 國有君王, 皆以六畜名官, 有馬加·牛加·豬加 ·狗加 호수戶數는 8만이다. 그 나라 사람들은 토착土著생활을 하며, 궁실宮室과 창고 및 감옥을 가지고 있다. 산릉山陵과 넓은 들이 많아서 동이東夷지역에서는 가장 넓고 평탄한 곳이다.  토질은 오곡五穀이 자라기에는 적당하지만, 오과五果는 생산되지 않는다.  그 나라 사람들은 체격이 크고 성질은 굳세고 용감하며, 근엄·후덕하여 다른 나라를 쳐들어가거나 노략질하지 않는다. 나라에는 군왕君王이 있고, 모두 육축六畜의 이름으로 관직 이름官名을 정하여  마가馬加(‘말(馬)’ 귀족보스)·우가牛加(‘소’ 귀족 보스)·저가豬加(‘돼지’ 귀족 보스)· 구가狗加(‘개’ 귀족보스)가 있으며  大使·大使者· (宋本, 犬皆作大. 官本, 下犬字, 作大. 何焯曰犬使二字, 疑衍. 姚範曰, 犬使, 疑作大使, 後言共立麻余牛加兄子, 爲大使也. ) 使者. 邑落有豪民, 名下戶皆爲奴僕.( 宋本·元本·馮本·官本, 下民字作名.)  諸加別主四出道, 大者主數千家, 小者數百家. (또 그 외에) 대사大使,대사자大使者,사자使者가 있다.  읍락邑落에는 호민豪民이 있으며, 하호下戶라 불리는 백성은 모두 노복奴僕(노예)이 되었다. 여러 Ka(諸加 : ‘諸’는 ‘여럿’이란 뜻. ‘加’의 음音은 Ka 혹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