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나라 기록 금사 조위총의 반란 고려 무인시대
금나라 기록 금사 조위총의 반란 고려 무인시대
//
중국사서 고려·발해유민 기사 > 금사 > 『금사』권135 열전73 외국(外國)下 > 고려 조위총이 반란하여 내속하겠다고 하다
원문
국역글자 크게글자 작게이전 기사다음 기사출력
글자 크게글자 작게
고려 조위총이 반란하여 내속하겠다고 하다
〈大定〉十五年, 高麗西京留守趙位寵叛皓, 遣徐彦等九十六人上表曰,校勘 001 “前王本非避讓, 大將軍鄭沖夫·郞將李義方實弑之. 臣位寵請以慈悲嶺以西至鴨綠江四十餘城內屬, 請兵助援.” 上曰, “王皓已加封冊, 位寵輒敢稱兵爲亂, 且欲納土, 朕懷撫萬邦, 豈助叛臣爲虐?” 詔執徐彦等送高麗. 頃之, 王皓定趙位寵之亂, 遣使奏謝. 自位寵之亂, 皓所遣生日回謝·橫賜回謝·賀正旦·進奉·萬春節等使, 皆阻不通. 至是, 皓幷奏之. 詔答其意, 其合遣人使令節次入朝.
校勘 001 ‘徐彦’ 뒤 부분에 ‘寧’자가 衍文으로 기재되어 있다. 『金史』 卷61 表3 交聘表 中 大定 15年 9月 기사와 『高麗史』 卷19 世家19 明宗 6年 11月 壬子, 『高麗史』 卷100 列傳13 諸臣 趙位寵 기사에는 ‘徐彦’으로 기재되어 있다.
글자 크게글자 작게
고려 조위총이 반란하여 내속하겠다고 하다
〈대정(大定)〉 15년(1175)에 고려의 서경유수(西京留守) 조위총(趙位寵)이 왕호(王皓, 명종)에게 반란을 일으켜서 서언(徐彦) 등 96명을 보내어 표문(表文)을 올리기를, “전왕(前王, 의종)은 본래 〈왕위를〉 피하여 양위한 것이 아니고, 대장군(大將軍) 정중부(鄭沖夫)와 낭장(郞將) 이의방(李義方)이 사실 시해하였습니다. 신 조위총은 자비령(慈悲嶺) 서쪽에서부터 압록강(鴨綠江)에 이르는 40여 성(城)으로써 내속(內屬)하기를 청하오니, 청컨대 군사로 원조하여 주시옵소서.”라고 하였다. 상이 말하기를, “왕호에게 이미 책봉[封冊]을 더해주었는데 조위총이 갑자기 군대를 동원한다고 칭하고는 반란을 일으키고는 또 땅을 바치려 하고 있도다. 짐은 만방(萬邦)을 품에 품고 어루만져야 하는데 어찌 반란한 신하가 포학한 짓을 하는 것을 도울 수 있겠는가?”라고 하고, 서언 등을 잡아서 고려로 보내라고 명하였다. 얼마 후에 왕호가 조위총의 반란을 평정하고 사신을 보내어 사은하였다. 조위총의 반란 때부터 왕호가 파견한 생일회사(生日回謝)•횡사회사(橫賜回謝)•하정단(賀正旦)•진봉(進奉)•만춘절(萬春節) 등의 사신이 모두 막혀서 통하지 못하였는데, 이 때에 이르러 왕호가 〈그 일을〉 함께 아뢰었다. 조서를 내려 그 뜻에 답하고, 합하여 사람을 파견하되 사령(使令)과 절차에 따라 입조(入朝)하게 하였다.
==
의종 : 으응 이의민 네이노옴
이의민 : 베어허그 ! 뿌드드득
의종 : 우꺅 ! (죽음)
왕호(명종) : 금나라 황상폐하. 조공을 바치옵니다. 이전의 왕은 왕위를 피하여 저에게 양위
하였사옵니다. 저를 고려 왕에 책봉하여주시옵소서.
금나라 황제 : 껄껄 오냐 껄껄
서경(평양) 유수 조위총 : 이이이이 이 역적놈들을 보았나 반란이다!
왕호 : 헉
정중부 : 헉
조위총 : 금나라 황상폐하. 40개 성을 들어다 바치겠사오니 역적의 무리를 진압할수있도록
원군을 보내주시옵소서.
금나라 황제 : 음… 귀찮다. 조위총이 보낸 사신을 고려 왕 왕호에게 잡아 보내라!
조위총 : 음…. 어떻게 이럴수가?
조위총이 정중부에게 토벌당해 뒤지다.
조위총이 토벌되자 고려의 조공 사신들이 금나라에 와서 금나라 황상폐하 만만세를 외치며
조공을 바치더라.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