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 견훤전 _ 신검이 크게 사면하고 교서를 발표하다 ( 935년 10월17일(음) )
삼국사기 견훤전 _ 신검이 크게 사면하고 교서를 발표하다 ( 935년 10월17일(음) )
[ " 국내에 크게 사면하였는데, 그 교서는 다음과 같다.註 001 “여의(如意)註 002가 총애를 입었으나 혜제(惠帝)註 003가 임금이 될 수 있었고, 건성(建成)註 004이 외람되게 태자의 자리에 있었으나 태종(太宗)註 005이 일어나 즉위하였으니, 천명은 바뀌지 않는 것이고, 왕위는 돌아갈 곳이 있는 것이다. 가만히 생각하건대, 대왕〔견훤〕의 신과 같은 무예는 매우 걸출하였으며, 훌륭한 지략은 옛사람들을 뛰어넘었다. 태어나 쇠퇴해가는 말세를 만났으나 천하를 다스릴 것을 자임하였고, 삼한(三韓)註 006 땅을 차지하여 백제를 부흥하였다. 도탄〔에 빠진 백성들의 고통〕을 제거하니 백성들이 편안하게 되었고, 격려하여 용기를 북돋우기를 바람과 천둥처럼 하니 가까이와 멀리에서 준걸들이 달려와 큰 공로는 거의 거듭 일어나기에 가까워졌다. 지혜롭고 사려가 깊었으나 갑자기 한 번 실수하여 어린 아들이 사랑을 차지하니 간신들이 권력을 마음대로 하여 대왕[大君]을 진(晉) 혜제(惠帝)註 007의 어리석음으로 인도하였고, 어진 아버지를 헌공(獻公)註 008의 미혹에 빠지게 하여 왕위[大寶]를 어리석은 아이[頑童]에게 줄 뻔하였다. 다행스러운 것은 상제께서 진정한 마음을 내리시니 군자들이 허물을 고쳤고, 맏아들인 나에게 명하여 이 한 나라를 다스리게 하셨다는 점이다. 돌아다보건대〔나는〕왕위를 이을만한[震長]註 009 재목이 아니니 어찌 임금 자리에 나아갈 만한 지혜가 있겠는가? 조심스럽고 두려워 마치 얼음이 언 연못을 밟는 듯하다. 마땅히〔하늘의〕특별한 은혜[不次之恩]註 010를 생각하여 새로운 정치[惟新之政]註 011를 펼칠 것이니 국내에 대사면령을 내리는 것이 옳다. 청태 2년(935) 10월 17일 새벽 이전의 이미 발각된 것이나 아직 발각되지 않은 것, 이미 결정된 것이나 결정되지 않은 것 중에서 사형[大辟]註 012 이하의 죄는 모두 그것을 사면한다. 맡은 자는 시행하라.” "
大赦境内, 其敎書曰, “如意持蒙寵愛, 惠帝得以爲君, 律成濫處元良, 太宗作而即位, 天命不易, 神器有歸. 恭惟大王神武超倫, 英謀冠古. 生丁衰季, 自任經綸, 徇地三韓, 復邦百濟. 廓清塗炭, 而黎元安集, 皷舞風雷, 而邇遐駿奔, 㓛業幾於重興. 智慮忽其一失, 㓜子鍾愛, 姦臣弄權, 導大君於晉惠之昏, 䧟慈父於獻公之惑, 擬以大寳授之頑童. 所幸者, 上帝降衷, 君子攺過, 命我元子, 尹兹一邦. 顧非震長之才, 豈有臨君之智. 兢兢慄慄, 若蹈冰淵. 冝推不次之恩, 以示惟新之政, 可大赦境内. 限清泰二年十月十七日昧爽以前, 已發覺未發覺, 已結正未結正, 大辟已下, 罪咸赦除之, 主者施行.” ] _삼국사기 견훤전
註 001
국내에 크게 … 다음과 같았다: 이 기사의 배치상 신검이 즉위하면서 발표한 교서처럼 보이나, 내용을 보면 그해 10월 17일 내린 교서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申虎澈, 1985, 「後百濟의 甄萱硏究(Ⅰ)-관계문헌의 예비적 검토-」, 『百濟論叢』 1; 1993, 「甄萱關係 文獻의 檢討」, 『後百濟甄萱政權硏究』,一潮閣, 181쪽).
註 002
여의(如意): 여의는 한(漢) 고조(高祖) 유방(劉邦)과 척부인(戚夫人)의 소생으로 고조의 넷째 아들이다. 고황후(高皇后) 여씨(呂氏)의 소생 영(盈)이 태자였는데, 고조는 그가 유약하다고 여겨 여의를 태자로 삼고 싶어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고조가 죽은 후 영이 혜제로 즉위하자 여후에 의해 독살되었다[임종욱 편저, 2010, 『중국역대인명사전』, 이회, 976쪽(여후) 및 1890쪽(척부인)].
註 003
혜제(惠帝): 전한(前漢)의 2대 황제(재위 B. C. 195~B. C. 188). 성명은 유영(劉盈)이다. 전한(前漢)의 고조(高祖) 유방(劉邦)의 차남이다. 어머니는 고황후(高皇后) 여씨(呂氏)이다. 태자로 책봉되었지만, 고조가 그를 유약하다고 여겨 여의로 바꾸려고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고조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되었다(임종욱 편저, 2010, 『중국역대인명사전』, 이회, 2034쪽).
註 004
건성(建成): 당(唐) 고조 이연(李淵)의 장자로 태종 이세민(李世民)의 형이며, 시호는 은(隱)이다. 당이 건국된 후 황태자가 되어 군웅들을 평정하는 데 활약하였으나, 이세민을 제거하려다가 오히려 이세민과 그 일파에게 살해되었다. 이세민은 즉위한 뒤 그를 식왕(息王)으로 추봉하였다. 그의 전기로는 다음이 있다. 『구당서』권64 열전제14 고조이십이자(高祖二十二子) 은태자건성(隱太子建成)전 및 『신당서』권79 열전제4 고조제자(高祖諸子) 은태자전.
註 005
태종(太宗): 당의 제2대 황제(재위 626~649). 이름은 이세민(李世民)이다. 아버지는 당 고조 이연(李淵)이고 어머니는 두(竇)씨다. 수(隋) 양제(煬帝)의 폭정에 맞서 아버지를 설득하여 거병, 장안(長安)을 점령하고 당(唐) 세웠다. 왕위 쟁탈전을 치르면서 무덕(武德) 9년(626) 아버지의 양위를 받아 즉위하였다. 수 양제의 실패를 거울삼아 명신 위징(魏徵) 등의 의견을 받아들여 사심을 누르고 백성을 불쌍히 여기는 지극히 공정한 정치를 하기에 힘썼다. 그의 치세는 ‘정관(貞觀)의 치(治)’라 칭송받았고, 후세 제왕의 모범이 되었다(임종욱 편저, 2010, 『중국역대인명사전』, 이회, 1408쪽).
註 006
삼한(三韓): 삼한은 본래 백제, 신라, 가야가 출현하기 이전에 한반도 중남부지방에 형성되어 있었던 정치집단의 명칭으로서 마한, 진한, 변한을 합쳐서 일컫는 말이었다. 후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을 가리키는 말로도 사용되었다. 본서 권제46 열전제6 최치원전에 따르면 그는 마한을 고구려, 변한을 백제, 진한을 신라라고 하였는데, 이러한 견해는 조선 후기까지 정설처럼 여겨졌다. 한편 후삼국을 통칭하는 용어이기도 하였다. 후삼국통일에 공을 세운 공신을 삼한공신이라고 하였다. 이후 삼한은 고려와 조선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었다(盧泰敦, 1982, 「三韓에 대한 認識의 變遷」, 『韓國史硏究』 38).
註 007
진(晉) 혜제(惠帝): 중국 삼국시대 서진(西晉)의 제2대 황제. 이름은 사마충(司馬衷)이다. 서진을 건국한 무제(武帝)의 아들이다. 성격이 어리석고 우매했다. 황제에 등극하였으나, 얼마 후 가후(賈后)가 국정을 장악하였다. 여러 왕들이 서로 다투어 팔왕지난(八王之亂)이 일어났고, 그 와중에 독살되었다고 한다(임종욱 편저, 2010, 『중국역대인명사전』, 이회, 1868쪽).
註 008
헌공(獻公): 춘추시대 진나라의 국군(國君). 이름은 궤저(詭諸)이고, 무공(武公)의 아들이다. 주변 여러 나라들을 공략하여 영토를 크게 넓혔다. 아들이 여덟 있었는데 태자 신생(申生)과, 공자 중이(重耳), 이오(夷吾) 등이 현명하다는 명성이 있었다. 하지만 폐첩(嬖妾) 여희(驪姬)를 총애하여 그의 아들 해제(奚齊)를 세우고자 태자 신생을 죽였다. 공자 중이와 이오는 외국으로 달아났고, 진나라는 혼란에 빠졌다. 26년 동안 재위하였다(임종욱 편저, 2010, 『중국역대인명사전』, 이회, 1866쪽).
註 009
왕위를 이을만한[震長]: 진장의 사전적 의미는 맏아들이다. 그런데 『주역』에서 진괘(震卦)는 천자의 후계자인 장자(長子)를 의미하며, 진장은 곧 태자를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李丙燾, 1977, 『國譯 三國史記』, 乙酉文化社; 2012, 『國譯 三國史記』(斗溪李丙燾全集 11), 한국학술정보, 798~799쪽의 주 42].
註 010
특별한 은혜[不次之恩]: 정상적인 순서를 뛰어넘는 보답을 하여야 할 큰 은혜라는 뜻이다[정구복 외, 2012, 『역주 삼국사기』(개정증보)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871쪽 주 141)].
註 011
새로운 정치[惟新之政]: 『시경』 대아편(大雅篇) 문왕(文王)에 “周雖舊邦 其命維新”에서 나온 말로 주(周) 문왕(文王)의 개혁 정치를 지칭한다[정구복 외, 2012, 『역주 삼국사기』(개정증보)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871쪽의 주 142)].
註 012
사형[大辟]: 대벽(大辟)은 중국 주(周)나라 때의 형벌 중 하나이다. 묵벽(墨辟)·의벽(劓辟)·비벽(剕辟)·궁벽(宮辟)·대벽(大辟) 등 오형(五刑)이 있었는데, 그중 가장 큰 형벌로 사형을 말한다(『한서』권23 형법지제3 및 세종대왕기념사업회·한국고전용어사전 편찬위원회, 2001, 『한국고전용어사전』2,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24~1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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