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사 유금필전의 운주성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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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 > 列傳 卷第五 > 諸臣 > 유금필 > 유금필이 운주 전투에서 승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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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금필이 운주 전투에서 승리하다
十七年, 太祖自將征運州, 黔弼爲右將軍. 甄萱聞之, 簡甲士五千至曰, “兩軍相鬪, 勢不俱全, 恐無知之卒, 多被殺傷. 宜結和親, 各保封境.” 太祖會諸將議之, 黔弼曰, “今日之勢, 不容不戰. 願上觀臣等破敵, 勿憂也.” 遂乘萱未陣, 以勁騎數千, 突擊之, 斬獲三千餘級, 擒術士宗訓, 醫師訓謙, 勇將尙達·崔弼. 熊津以北三十餘城, 聞風自降.
색인어
이름太祖,黔弼,甄萱,太祖,黔弼,萱,宗訓,訓謙,尙達,崔弼
지명運州,熊津
관직右將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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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금필이 운주 전투에서 승리하다
〈태조〉 17년(934) 태조가 직접 운주(運州)를 치려 할 적에 유금필을 우장군(右將軍)으로 삼았다. 견훤이 그 소문을 듣고 뛰어난 병사 5,000명을 뽑아서 와서 말하기를, “양군이 맞서 싸우면 형세가 모두 온전하지 못할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병사들이 많이 죽거나 다칠까 염려되니 화친(和親)을 맺어 각각 봉토의 경계를 지키도록 하자.”라고 하였다. 태조가 여러 장수들을 모아 의논하였다. 유금필이 말하기를, “오늘의 형세는 싸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상께서는 신들이 적을 깨뜨리는 것을 보시고, 걱정하지 마시옵소서.”라고 하였다. 마침내 견훤이 아직 진영을 갖추지 못한 틈을 타 날랜 기병 수천 명으로 돌격하였다. 3,000여 급(級)을 베거나 사로잡았고, 술사(術士) 종훈(宗訓), 의사(醫師) 훈겸(訓謙), 용장(勇將) 상달(尙達)·최필(崔弼)을 포로로 잡았다. 웅진(熊津) 북쪽의 30여 성이 소문을 듣고 스스로 항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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