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삼국 지다이_왕창근의 도참 카가미 사건 사료_고려사
후삼국 지다이_왕창근의 도참 카가미 사건 사료_고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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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창근이 도참이 새겨진 거울을 바치다
서기 918년 3월 미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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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王昌瑾,昌瑾,昌瑾,昌瑾,昌瑾,裔,裔,昌瑾,昌瑾,裔,宋含弘,白卓,許原,含弘,王侍中,王侍中,王侍中
지명東州,松嶽郡,鐵圓,鴨綠
단체勃颯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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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창근이 도참이 새겨진 거울을 바치다
貞明四年 三月 唐商客王昌瑾, 忽於市中, 見一人, 狀貌瓌偉, 鬚髮皓白, 頭戴古冠, 被居士服, 左手持三隻梡, 右手擎一面古鏡方一尺許. 謂昌瑾曰, “能買我鏡乎?” 昌瑾以二斗米買之. 鏡主將米沿路, 散與乞兒而去, 疾如旋風. 昌瑾懸其鏡於市壁, 日光斜映, 隱隱有細字可讀. 其文曰, “三水中四維下, 上帝降子於辰馬, 先操雞後搏鴨, 此謂運滿一三甲. 暗登天, 明理地, 遇子年中興大事, 混蹤跡沌名姓, 混沌誰知眞與聖? 振法雷揮神電, 於巳年中二龍見, 一則藏身靑木中, 一則現形黑金東. 智者見愚者盲, 興雲注雨與人征, 或見盛或視衰, 盛衰爲滅惡塵滓. 此一龍子三四, 遞代相承六甲子. 此四維定滅丑, 越海來降須待酉. 此文若見於明王, 國泰人安帝永昌. 吾之記, 凡一百四十七字.” 昌瑾初不知有文, 及見之, 謂非常, 獻于裔. 裔令昌瑾物色求其人, 彌月竟不能得. 唯東州勃颯寺熾盛光如來像前, 有塡星古像, 如其狀, 左右亦持梡鏡. 昌瑾喜, 具以狀白, 裔歎異之, 令文人宋含弘·白卓·許原等, 觧之. 含弘等曰, “‘三水中四維下, 上宰降子於辰馬’者, 辰韓馬韓也. ‘巳年中二龍見, 一則藏身靑木中, 一則現形黑金東’者, 靑木松也, 謂松嶽郡人, 以龍爲名者之子孫, 可以爲君主也. 王侍中, 有王侯之相, 豈謂是歟? 黑金鐵也, 今所都鐵圓之謂也. 今主初盛於此, 殆終滅於此乎! 先操雞, 後搏鴨者, 王侍中御國之後, 先得鷄林, 後收鴨綠之意也.” 三人相謂曰, “王猜忌嗜殺, 若告以實, 王侍中必遇害, 吾輩亦且不免矣.” 乃詭辭告之.
정명(貞明) 4년(918) 3월 당나라 상인 왕창근(王昌瑾)이 어느 날 우연히 시장에서 한 사람을 보았는데, 용모가 훤칠하고 수염과 머리털이 희고 머리에는 낡은 관을 쓰고 거사(居士)의 옷을 입고 왼손에는 바리 3개를, 오른손에는 사방 1척 남짓 되는 옛 거울 하나를 들고 있었다. 왕창근에게 말하기를, “내 거울을 살 수 있습니까?”라고 하기에 왕창근이 쌀 2두를 주고 그것을 샀다. 거울 주인은 쌀을 가지고 길을 따라 가다가 거지 아이들에게 나누어주고 갔는데 빠르기가 회오리바람 같았다. 왕창근이 그 거울을 저자의 담장에 걸자, 햇빛이 비스듬히 비치며 읽을 수 있을 정도의 가느다란 글자가 은은히 나타났다. 그 글에 이르기를, “삼수(三水) 가운데 사유(四維) 아래로 옥황상제가 아들을 진마(辰馬)에 내려 보내어 먼저 닭[雞]을 잡고 뒤에 오리[鴨]를 치리니 이것은 운수가 차서 삼갑(三甲)을 하나로 하는 것을 이름이라. 어둠 속에서 하늘에 올라 밝음 속에서 땅을 다스리니 자년(子年)을 만나면 대사(大事)가 중흥할 것이며, 자취와 이름이 혼돈(混沌)되니 혼돈 속에서 누가 진(眞)과 성(聖)을 알리오? 법뢰(法雷)를 떨치고 신전(神電)을 휘두르며 사년(巳年) 중에 두 마리 용이 나타나서 하나는 청목(靑木) 속에 몸을 감추고 다른 하나는 흑금(黑金) 동쪽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지혜로운 자는 보고 어리석은 자는 보지 못하니 구름을 일으키고 비를 뿌리며 사람들과 더불어 가서 때로는 번성함을 드러내고 때로는 쇠퇴함을 보이기도 하나 성쇠(盛衰)는 악한 찌꺼기를 없애기 위함이라. 이 중 한 마리 용은 아들이 서너 명인데 대를 번갈아 육갑자(六甲子)를 서로 이을 것이다. 이 사유(四維)는 반드시 축년(丑年)에 멸망하고 바다를 건너 와서 항복함은 모름지기 유년(酉年)을 기다린다. 이 글을 만약 현명한 왕이 보게 되면 나라와 백성이 크게 평안하고 왕업은 길이 창성할 것이다. 내가 적은 것은 무릇 147자이다.”라고 하였다. 왕창근이 처음 글자가 있는 줄 몰랐다가 이를 보고는 평범하지 않은 것이라고 여겨 궁예(弓裔)에게 바쳤다. 궁예가 왕창근에게 명하여 그 〈거울을 판〉 사람을 찾도록 하였으나 한 달이 지나도록 찾지 못하였다. 오직 동주(東州) 발삽사(勃颯寺)의 치성광여래상(熾盛光如來像) 앞에 전성(塡星)의 옛 상이 있었는데, 그 모습이 〈거울 주인과〉 같고 좌우 양손에 바리와 거울을 들고 있었다. 왕창근이 기뻐하며 그 모습을 갖추어 아뢰자 궁예가 감탄하고 기이하게 여겨 문인 송함홍(宋含弘)·백탁(白卓)·허원(許原) 등에게 명하여 그것을 풀게 하였다. 송함홍 등이 말하기를 “‘삼수 가운데 사유 아래로 상제가 아들을 진마에 내려 보낸다.’는 것은 진한(辰韓)과 마한(馬韓)이다. ‘사년 중에 두 마리 용이 나타나서 하나는 청목 속에 몸을 감추고 다른 하나는 흑금 동쪽에 형체를 드러낸다.’라는 것은, 청목은 송(松)이니 송악군(松嶽郡) 사람으로서 용(龍)자 이름을 가진 이의 자손이 임금이 될 것이라는 말이다. 왕시중(王侍中)에게 왕후(王侯)의 상이 있으니 어찌 이를 이름이 아니겠는가? 흑금은 철(鐵)이니 지금 도읍한 바인 철원(鐵圓)을 말한다. 지금 임금께서 처음에는 이곳에서 번성하였다가 끝내 이곳에서 멸망한다는 것이로다! ‘먼저 닭을 잡고 뒤에는 오리를 칠 것이다.’라고 한 것은 왕시중이 임금이 된 뒤 먼저 계림(鷄林)을 얻고 뒤에 압록강(鴨綠江)을 거둔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세 사람은 서로 이르기를, “임금께서 시기하여 사람 죽이기를 좋아하니, 만일 사실대로 아뢰면 왕시중이 반드시 해를 만날 것이고 우리도 또한 〈화를〉 면치 못할 것이다.”라고 하고 꾸며댄 말로 보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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